우리 주님의 재림

연구 6

우리 주님의 재림 -- 그것의 목적 

만유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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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재림, 천년 왕국 이전에 개인으로

--재림의 첫 강림과의 관계

--교회의 선택과 세상의 전향

--택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

--소망을 품은 갇힌 자들(9:12)

--만유의 회복에 관한 예언자의 증언

--우리 주님의 재림은 명백히 교회와 세상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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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재림, 천년 왕국 이전에 개인으로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임명된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전에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 하늘은 참으로 그를 그 안에 모셔야 합니다." (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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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ÀÏ ¿¹¼ö´ÔÀÌ 2000³â µ¿¾È ±³È¸¿Í ÇÔ²² °è¼ÌÀ¸¸é, ¿Ö ±×°¡ ´Ù½Ã ¿À½Ã°Ú´Ù°í ¾à¼Ó Çϼ̴°¡?

     우리 주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어느 방법으로 언젠가 그가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그의 제자들이 이해할 것을 의도하신 것은, 우리가 추정하기로는, 성서에 익숙한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고 믿고 있다. 실로 예수께서 "보십시오! 나는 사물의 제도의 종결까지 여러분과 항상 함께 있습니다." (28:20)라고 말씀하시고, 그는 그의 영과 그의 말씀으로 그의 성도들을 안내하시고, 지도하시고, 위로하시고 떠받치시며 그들의 모든 고통가운데서 그들을 격려하시면서 계속해서 교회와 같이 계시었다.

     그러나 교회가 모든 교회의 경로를 예수께서 알고 계시고, 그가 항구적으로 권고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행히 의식을 하였지만, 아직도 교회는 그가 약속하신 개인의 재림을 열망한다. "내가 가면, 내가 다시 올 것이다." (14:3)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확실히 개인의 재림을 언급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À¼øÀýÀº À縲 ¶§°¡ ¾Æ´Ï¾ú´Ù.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오순절에 성령이 내려오는 것을 언급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파괴 등을 언급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³ª ¿À¼øÀýÀÌ Áö³­ Áö ÇÑ 60³â ÈÄ, ¿¹·ç»ì·½ÀÌ Æı« µÈÁö 26³â ÈÄ¿¡ ±â·ÏµÈ ¼º°æ ¸Ç ¸¶Áö¸· Ã¥¿¡, Á×¾ú´Ù°¡ »ì¾Æ³ª½Å(°è 1:18) ±×°¡ ¾ÆÁ÷ ¹Ì·¡ »ç°Ç¿¡ ´ëÇØ ¡°º¸¶ó ³»°¡ ¼ÓÈ÷ ¿À¸®´Ï ³»°¡ ÁÙ »óÀÌ ³»°Ô ÀÖ¾î °¢ »ç¶÷¿¡°Ô ±×ÀÇ ÀÏ Çѵ¥·Î °±¾Æ ÁÖ¸®¶ó."°í ¾ð±ÞÇϽŠ»ç½ÇÀ» À̵éÀÌ À¯ÀÇÇÏÁö ¸øÇÏ°í ÀÖÀ½ÀÌ ¸í¹éÇÏ´Ù. ÀÌ¿¡, ¿µ°¨À» ¹ÞÀº ¿äÇÑÀº ¡°¾Æ¸à ÁÖ ¿¹¼ö¿©, ¿À½Ê½Ã¿À"(°è 22:12,20)¶ó°í ´äº¯ÇÑ´Ù.

¿ì¸® ÁÖ´ÔÀÌ À縲 ÇÏ½Ç ¶§, ÀÌ ¼¼»óÀº Çϳª´Ô²²·Î °áÄÚ ÀüÇâµÇ¾î ÀÖÁö ¾ÊÀ» °ÍÀÌ´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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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많은 수가 생각하기를,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전향할 때 그것이 예수의 재림의 한 부분을 형성한다고 하며, 그래서 모든 세상이 하나님께로 전향할 때까지 그는 계속 오실 것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 완전히 오시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들은 분명히 그들의 기대에 반대를 선언하는 주제에 관한 성서의 다음 증언들을 잊고 있다

(1)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 세상은 전혀 하나님께로 전향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2) "마지막 날에 대처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가 올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을 사랑" 한다는 것. (딛후 3:1-4) 

(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더 악해져서 그릇 인도하기도 하고 그릇 인도되기도 할 것"이라는 것. (13) 그들은 적은 무리에게 주신 주님의 특별한 경고를 잊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과식, 과음과 생활의 염려로 짓눌려, 갑자기 그 날이 덫과 같이 순식간에 여러분에게 닥치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은 온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입니다." (21:34,35) 

     ±×¹Û¿¡, ±×µéÀÌ ±×°¡ À縲ÇϽô °ÍÀ» º¼ ¶§, ¡°¶¥ÀÇ ¸ðµç ºÎÁ·ÀÌ ±× ¶§¹®¿¡ ºñź¿¡ Àá°Ü °¡½¿À» Ä¥ °ÍÀÔ´Ï´Ù."(°è 1:7)¶ó°í ÇϽŠ¸»¾¸¿¡, ÁËÀεéÀÌ ÀüÇâµÇ´Â °Í¿¡´Â ¾Æ¹«·± ¾ð±ÞÀÌ ¾ø´Ù´Â °ÍÀ» ¿ì¸®´Â È®½ÅÇÒ ¼ö ÀÖ´Ù. ÁËÀεéÀÌ Çϳª´Ô²²·Î ÀüÇâµÇ´Â °Í ¶§¹®¿¡ ¸ðµç »ç¶÷ÀÌ ¾Ö°îÇϴ°¡?

     이에 반하여 거의 모두가 인정하듯이, 만일 위의 구절이 지상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리어 다음 사실을 가르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전향되었다면, 그들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출현을 반길 것이지만, 지상의 모든 사람이 그의 출현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

     어떤 사람은 주님의 육체적 재림과 임재를 예기하나, 현재의 상태 (육신상태)에 있는 교회의 노력을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께로 전향되어야 하고, 이렇게 천년시대가 소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림 시일을 멀리 정한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세상이 하나님께로 전향되고, 사탄이 결박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되며, 나라들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을 그 때 현재의 상태 (육신상태)에 있는 교회의 일이 끝날 것이며, 교회가 이 중대하고 어려운 임무를 성취할 때, 주님이 지상의 용건들의 결말을 짓고 신자들을 보답하시고, 죄인들을 정죄 하시기 위하여 오실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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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성경 구절들은 제각기 따로 취하면 이 견해를 지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과 계획을 전체로서 고찰할 때, 이 모두가 정반대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세상이 하나님께로 전향되기 전에 오시며, 그 전향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통치하신다는 것과 교회는 지금 시험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과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상은 영광을 받은 후, 그 통치에 주님과 함께 참여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ÀÌ ÅëÄ¡´Â ¼¼»óÀ» ÃູÇÏ°í, Çϳª´ÔÀ» ¾Æ´Â Áö½ÄÀÌ ¸ðµç ÇÇÁ¶¹°¿¡°Ô ¹ÌÄ¡°Ô ÇÏ´Â Çϳª´ÔÀÇ ÁöÁ¤µÈ ¼ö´ÜÀÌ´Ù. ÁÖ´ÔÀÇ Æ¯º°ÇÑ ¾à¼ÓÀº ÀÌ¿Í °°´Ù. ¡°À̱â´Â »ç¶÷Àº ³ª¿Í ÇÔ²² ³» ¿ÕÁ¿¡ ¾É°Ô ÇÏ°Ú´Ù."(°è 3:21) ¡°±×µéÀº »ì¾Æ³ª¼­ ±×¸®½ºµµ¿Í ÇÔ²² õ³âµ¿¾È ¿ÕÀ¸·Î ÅëÄ¡ÇÏ¿´´Ù."(°è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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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서 천년시대 후까지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신뢰하는 두 본문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 두 가지 본문에 주의를 환기하려고 한다. 첫째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도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다. ( 24:14) 

     그들은 이것을 복음시대의 종말 전에 세상이 하나남께 전향함에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상에다 증언하는 것은 세상의 전향함을 함축하지 않는다. 이 본문은 세상이 이 증언을 어떻게 받아드리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이 증언은 이미 나갔다

     1861 년에 성서협회의 보고서들은 보여주기를, 지상 수백만의 모두가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지상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니다. 이제까지 현존하는 16억 인구 중 그 절반도 예수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없다. 그러나 본문의 조항은 성취되었다. 곧 복음(좋은 소식)이 증언으로서 온 세상에 모든 민족에게 전도되었다.

ÇöÀç½Ã´ë¿¡ º¹À½ÀÇ ÁÖ¿ä¸ñÀûÀº ¹«¾ùÀΰ¡?

     사도 야고보 ( 15:14) 는 현재시대에 복음의 주요목적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에게 결합되고, 그의 이름을 받게될 이겨내는 교회 곧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취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대에 세상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은 둘째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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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µÑ° º»¹®Àº ¡°³»°¡ ³× ÀûµéÀ» ³× ¹ßÆÇÀ¸·Î ³õÀ» ¶§±îÁö ³» ¿À¸¥Æí¿¡ ¾É¾Æ ÀÖ¾î¶ó"(½Ã 110:1) ÀÌ º»¹®¿¡ °üÇÏ¿©, ¸ðÈ£ÇÏ°í ºÒ¸íÈ®ÇÑ °ü³äÀº ±×¸®½ºµµ°¡ Çϴþîµð¿¡ ¹°ÁúÀû º¸Á¿¡ ¾É¾Æ¼­, ±³È¸¸¦ ÅëÇؼ­ ¸¸¹°À» ±×¿¡°Ô ¼øÁ¾ÄÉ ÇÏ´Â ÀÏÀÌ ¼ºÃëµÉ ¶§±îÁö °è½Ã´Ù°¡, ±× ´ÙÀ½¿¡ ±×°¡ ÅëÄ¡ÇÏ·Á°í ¿À½Ã´Â °Íó·³ º¸ÀδÙ. ÀÌ°ÍÀº ±×¸©µÈ »ý°¢ÀÌ´Ù.

     ÂüÁ¶µÈ Çϳª´ÔÀÇ º¸Á´ ¹°ÁúÀûÀÎ °ÍÀÌ ¾Æ´Ï°í ±×ÀÇ ÃÖ°íÀÇ ±Ç¼¼¿Í ÅëÄ¡ÀÚÀÇ À§Ä¡¸¦ Áö½ÃÇÑ´Ù. ±×¸®°í ÁÖ ¿¹¼ö²²¼­´Â ±× ÅëÄ¡ÀÚÀÇ ÁöÀ§¸¦ °øÀ¯Çϵµ·Ï ³ô¿©Áö¼Ì´Ù. ¹Ù¿ïÀÌ ¼±¾ðÇϱ⸦, ¡°Çϳª´Ô²²¼­ ±× ºÐ(¿¹¼ö)À» Ź¿ùÇÑ À§Ä¡·Î ³ôÀ̽þî, Ä£ÀýÇϽðԵµ ±×¿¡°Ô ´Ù¸¥ ¸ðµç À̸§º¸´Ù ¶Ù¾î³­ À̸§À» Áּ̽À´Ï´Ù."(ºô 2:9) Çϳª´ÔÀº ±×¿¡°Ô ¾Æ¹öÁö¸¦ Á¦¿ÜÇÏ°í ¸ðµç ±Ç¼¼ À§¿¡ ¶Ù¾î³­ ±Ç¼¼¸¦ Á̴ּÙ.

     ¸¸ÀÏ ±×¸®½ºµµ°¡ ±×ÀÇ ¿ø¼öµéÀ» ±×ÀÇ ¹ßµî»ó ¸¸µé ¶§(¸ðµÎ ¼øÁ¾ÄÉ ÇÒ ¶§)±îÁö ¹°ÁúÀûÀÎ º¸Á¿¡ ¾É¾Æ °è½Ã¸é, ´ç¿¬È÷ ¸¸¹°ÀÌ Á¤º¹ µÉ ¶§±îÁö ±×°¡ ¿À½Ç ¼ö ¾ø´Ù. ±×·¯³ª ÀÌ º»¹®¿¡¼­ ¡°¿À¸¥ ¼ÕÀº °íÁ¤µÈ À§Ä¡¿Í º¥Ä¡°¡ ¾Æ´Ï¶ó, ¿ì¸®°¡ ÁÖÀåÇÏ´Â ¹Ù¿Í °°ÀÌ ±Ç´É, ±Ç¼¼, ÅëÄ¡ÀÚÀÇ À§Ä¡¸¦ Áö½ÃÇÑ´Ù. ±× ¸»Àº °ËÅä Áß¿¡ ÀÖ´Â º»¹®ÀÌ ±×¸®½ºµµ¿¡°Ô ºÎ¿©µÈ ±Ç´ÉÀÇ ÈûÀ¸·Î ¡°¸ðµç °ÍÀ» ±× Àڽſ¡°Ô º¹Á¾½ÃÅ°±â"(ºô 3:21)À§ÇÏ¿© ±×°¡ ¿À½Å´Ù°í °¡¸£Ä¡´Â ´Ù¸¥ ±¸Àý°ú °áÄÚ ºÒÀÏÄ¡ÇÏÁö ¾ÊÀ» °ÍÀ̶ó´Â °á·ÐÀÌ µÈ´Ù

     예를 들면, 윌리암 (William) 황제가 독일 왕좌에 앉아 있다고 우리가 말한다고 해서 왕의 벤치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그는 좀처럼 벤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가 왕좌에 있다고 하는 말은 그가 독일을 통치한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편은 최고의 위치, 최고의 통치자 다음, 탁월하거나 호의적인 위치를 의미한다.

     이렇게 독일황제가 왕자 비스마르크(Bismark) 를 높였다. 곧 권세의 우편에 앉혔다. 그리고 이집트 왕국에서, 요셉(Joseph)을 파라오 (Pharaoh)의 우편에 앉혔다. 글자 그대로가 아니고 재래의 비유적 표현이다. 예수님께서 가야바(Caiaphas) 에게 하신 말씀은 이 사고와 일치한다

     ¡°ÀÌÁ¦ºÎÅÍ ¿©·¯ºÐÀº »ç¶÷ÀÇ ¾ÆµéÀÌ ±Ç´ÉÀÇ ¿À¸¥Æí¿¡ ¾É¾Æ ÀÖ´Â °Í°ú ÇÏ´Ã ±¸¸§À» Ÿ°í ¿À´Â °ÍÀ» º¼ °ÍÀÔ´Ï´Ù."(¸¶ 26:64) ¿À½Ç ¶§ ±×´Â ¿ìÆí¿¡ °è½Ç °ÍÀ̸ç, õ³â½Ã´ë¿Í ±× ÈÄ ¿µ¿øÈ÷ °è¼Ó ¿ìÆí¿¡ ³²¾Æ°è½Ç °ÍÀÌ´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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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첫 강림과의 관계

     하나님의 나타난 계획들의 더 깊은 연구는 첫 강림과 재림의 목적의 더 넓은 견해를 줄 것이다. 그리고 두 사건은 한 계획의 부분으로서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첫 강림 때의 특수한 일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고, 재림 때의 특수한 일은 만유를 회복하고 구속된 자들을 축복하고 해방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속죄물로 주셨으므로 (딛전 2:6) 우리 구세주는 그 제물을 아버지께 바치시기 위하여 승천하셨다. 이렇게 인간의 죄를 위해 화해시킨다. 현재 사악한 세상 (1:4)의 영향을 극복해야 하며, 그러한 명예를 얻기에 합당하다고 간주되는 "신부, 어린양의 아내"(21:9)의 선택 이후까지, 그는 이 세상의 통치자?(12:31)가 사악한 통치를 계속하는 것을 묵인하시며 기다리신다

     그 때에는 그의 희생으로 그들에게 보장된 큰 축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일을 시작하기로 되어있으며, 그는 땅의 모든 가족을 축복하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다.

     실로, 구속자가 속죄물 값을 치르셨을 때, 만유를 회복하고, 축복하는 일을 즉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시아의 임하심은 한가지 사건(첫 강림) 뿐이고, 최초에 그의 사도들이 기대하였듯이 (1:6) 통치와 축복의 일을 즉시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그리스도 교회)를 위하여 더 나은 것을"예비하셨다.(11:40)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는 19세기동안 그 머리의 고난에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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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인류를 위하여 속죄물로 주심과 온 인류에게 주실 축복 사이인 첫 강림과 재림사이의 기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시험하고 선택하기 위한 기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님의 재림은 없고 첫 강림만 있었을 것이며, 천년시대에 두 번째 임재 기간에 성취할 일이 예수님 부활에 잇따라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림 때의 일이 첫 강림 때의 일을 즉시 잇따라 일어났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보다는 이렇게 말하자- 만일 여호와께서 "적은 무리" ("그리스도의 몸")를 선택하는 것을 의도하시지 않으셨다면 첫 강림은 과거에 일어나지 않고 재림 때 일어났을 것이며, 강림이 오직 하나만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곱 째 천년동안에 만유를 정결케 함과 회복하게 함이 성취될 것뿐이 아니라, 6천년동안 사악의 묵인을 분명히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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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죄인들을 위한 희생과 속죄물로서 예수님께서 오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 자" (8:17)"적은 무리"의 선택을 고려하여, 축복과 만유를 회복하시는 시기보다 충분히 오래 앞당겨 일어난 것을 깨닫게 됐다

     이것이 속죄물 속에 약속되고 준비된 축복을 베푸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에 명백한 지연의 이유를  밝혀줄 것이다. 영광스러운 목적을 위하여 그 대가가 인간이 기대했을 것 보다 훨씬 이전에 미리 준비되었지만 축복은 최초에 계획된 대로 ¶§¸¦ ¸ÂÃß¾î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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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선택과 세상의 전향 

     예수님의 승천에서 시작하여 만유를 회복하는 시기의 초인 천년시대 초까지, 그 사이에 낀 전 기간동안,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다고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만유가 회복될 때까지, 하늘은 그를 그 안에 모셔야 합니다." (3:21)

     성경말씀이 우리 주님의 재림의 목적은 만유의 회복이라는 것과 그가 나타날 때, 이방인들은 격분하고 (11:18) 대항상태에 있을 정도로 하나님께로 전혀 전향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므로, 다음 둘 중에 하나를 인정해야 한다

(1) 교회가 교회 사명을 성취하는데 실패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제까지는 좌절될 것이라거나

(2)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주장하고 제시한 것같이, 현재 시대에 세상을 하나님께로 전향하게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으나, 교회 사명은 좋은 소식(복음)을 온 세상에 증거 하기 위하여 전파하고(24:14) 교회의 위대한 미래의 사명을 위해서 신의 지도 아래 교인 자신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전향하게 하시는 그의 권능을 아직 결코 고갈하시지 않으셨다. 아니, 그보다 더하시다. 그는 세상의 전향을 아직 시도조차도 하시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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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이상한 진술 같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 시도 하셨다면, 그는 현저히 실패하셨다는 것을 반영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아온 바와 같이, 지상 수억의 사람들 중에 소수만이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하늘 아래 없는 유일한 이름을 ( 4:12) 지적으로 들어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몇 개의 지도적인 종파들인 침례교, 장로교, 등의 견해와 가르침을 강력히 진술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적은 무리" 곧 교회를 선택하시고 계시다는 것. 그들은 하나님께서 단지 교회만을 선택하실 뿐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신의 계획 가운데 한 걸음 더 나아간 단계인 교회 선택이 끝나고 영광을 받을 때, 택함 받은 교회를 통해서 성취 될 세상을 위한 만유의 회복을 가르치는 성서를 발견한다

     이 복음시대의 "적은 무리"인 이긴 자들은 그들 안에서나 그들 때문에 땅의 모든 가족이 복을 얻게 되는 "그 씨"의 단지 몸이다 (머리는 제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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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6천년동안 세상을 하나님께로 전향하려고 노력하셨는데 항상 실패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견해를 성경의 보증 곧 하나님의 모든 목적은 성취되며, 그의 말씀은 헛되이 그에게 돌아가지 아니하고 그가 하라고 보낸 일에서 성공할 것임 ( 55:11)과 일치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함에 틀림없다

     세상이 아직 하나님께로 전향하지 않았다는 것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 말씀이 그 사명을 띠고 보내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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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Áø¸®ÀÇ ¸»¾¸À» ¿Ç°Ô ºÐº°¡± (µóÈÄ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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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

     그럼 우리는 수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을 분할한 두 가지 방향의 사고, 즉 택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우리에게 생각나게 한다. 이 두 교리는 명백한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지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어느 성경 연구자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두 가지가 다 진실임에 틀림없으나, 하늘의 율법과 질서를 관찰하고, 이 제목에 대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않고는(딛후 2:15) 이 둘이 결코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추측하도록 이 사실은 우리를 즉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이 질서는 주시해본다면, 시대에 관한 계획 가운데 묘사된 대로, 택하심은 현재와 과거를 통하여 계속하고 있지만, 구별 방법으로 명시된 값없이 주시는 은혜는 천년시대를 통하여 대체로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예비라는 것을 우리에게 명백히 보여줄 것이다

     만일 바로 이전 장에서 개관한 시대들과 경륜들의 독특한 특징이 마음속에 새겨 있고, 택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관계되는 모든 성경구절들을 찾아내고 검토한다면, 택하심을 다루는 모든 성경구절들은 현재와 과거시대에 응용되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다루는 성경구절들은 완전히 다음 시대에 적용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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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바와 같이, 택하심은 임의의 강제나 보통 운명론의 옹호자들이 신봉하고 가르치는 운명론이 아니고, 그 선택 목적을 위하여 지정된 기간동안에 하나님께서 유의하시고 계신 목표에 적합함과 적응에 의거한 선택이다.

     아르미니아 인들 (Arminians)이 옹호하는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교리는 이 교리의 가장 진지한 옹호자들이 이제까지 가르쳤던 것 보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의 훨씬 장려한 전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나 특별한 사랑은 공로 없이 얻어진다는 뜻에서 언제나 값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죄로 타락한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하나님의 은혜는 특수한 개인, 민족, 계급에게 제한되었다. 그런데 다음시대에는 천하 만민이 그 당시에 모두에게 알려지는 조건들에서, 그 때에 부여되는 은혜를 같이 받도록 초청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마시게 될 것이다. (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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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ª´Â À̽º¶ó¿¤ ÁýÀÇ ÀÒÀº ¾î¸°¾ç ¿Ü¿¡´Â ´Ù¸¥ µ¥·Î º¸³»½ÉÀ» ¹ÞÁö ¾Æ´ÏÇÏ¿´´Ù.¡± (¸¶ 10:5,6)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대강 흝어 볼 때,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을 축복하는 자 곧 그 약속된 씨가 오는 ( 3:29) 가계를 통하는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의 어떤 정해진 자손을 선택하시는 것을 우리는 유의한다. 전형적으로 그 나라 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위한 위대한 일을 완수하시리라는 것을 예증하신 나라로서, 모든 민족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을 우리는 역시 유의한다

     이집트에서 그들의 구출, 그들의 가나안 땅 (Cannan), 그들의 계약, 그들의 율법, 죄를 위한 제사, 범죄의 소멸과 백성들에게 뿌리기 위한 그들의 동물 제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완수하기 위한 그들의 제사장은 세상 모든 인류를 깨끗하게 하기 위한 참 제사장과 참 제물의 모형이며 전형적 표상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면서."내가 땅의 모든 가족 중에서 오직 너희만을 알았다." 하셨다. ( 3:2)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이 백성만을 알아보셨다. 그렇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랬다

     그리스도의 직무는 그들에게 제한되었으며, 그가 제자들을 보내실 때 "이방 사람들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 사람의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는 그의 제자들이 다른 민족에게 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그의 제자들이 묻기를, "주여 어째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냐하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어린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 (10:5,6, 15:24)고 하셨다. 그의 모든 시간을 죽으실 때까지 그들에게 바치시고, À̽º¶ó¿¤¿¡¼­ Çϳª´ÔÀÇ °ª¾ø°í dzºÎÇÑ ÀºÇý¸¦ ù ¹øÀ¸·Î ³ªÅ¸³»¼Ì´Ù. "ÀûÀýÇÑ ¶§¿¡¡± °°Àº ÀºÇý°¡ ¼¼»ó ¸ðµç Àηù¿¡°Ô Áø½Ç·Î ÃູÀÌ µÉ °ÍÀÌ´Ù.

Çϳª´ÔÀÇ ¼±¹°Àº ¹«Á¦ÇÑÇÏ´Ù.

     하나님의 가장 숭고한 선물인 이것은 민족이나 계급에게 제한되지 않았다.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 보셨기 때문이다. ( 2:9)
     그리고 지금도 역시 복음시대에 어떤 종류의 택하심을 받은 자가 얻는다. 세상의 어떤 지역은 다른 지역들 보다 (값없이 듣는 모든 사람에게 오는) 복음으로 더 많은 은혜를 받았다.

     세계지도를 한번 보자. 얼마나 작은 부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뚜렷한 정도로 교화되고 축복이 되었는지 보자. 특권과 지식을 가진 당신 자신과 오늘날 부르심을 들어 본 적이 없고, 따라서 부르심을 받지 못한 이교의 암흑에 있는 수백만 수의 사람들과 대조해 보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들이 되기 위하여 부르심 받고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고히 이룩한 일단의 수가 찰 때, 그 다음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단지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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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단이 선택되고, 성숙해지고, 권세의 자리로 높여지기까지는 그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그 분이 얼마 안 있어 사탄을 여러분의 발아래 부서뜨리실 것입니다."(16:20, 3:15) 복음시대는 신랑이 오시는 것을 위해서 정결한 처녀, 충실한 교회를 예비케 한다. 그리고 이 시대 끝에, 교회가 "준비" 될 때( 19:7) 신랑이 오시고, 예비한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간다. ( 25:10) 

     둘 째 아담과 둘째 이브는 한 몸이 되며, 그 다음에 만유의 회복의 영광스러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 다음 경륜,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교회는 더 이상 정혼한 처녀가 아니고 신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성령과 신부가 오시오 하고 계속 말한다그러므로 누구든지 듣는 사람은 오시오! 하고 말하십시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오십시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생명수를 거저 마십시오." (22:17)

     복음시대는 교회의 사명을 종결하기는커녕 웅대한 미래의 일을 위한 오직 필요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약속되고 앞으로 올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모든 피조물이 지금 까지 계속 함께 신음하며 함께 고통 당하고 있다. ( 8:19,22) 

     그리고 단지 살고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을 위한 한량없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는 앞으로 오는 시대의 축복 된 기회로서, 우리 아버지의 계획가운데 준비되어있다는 것은 축복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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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품은 갇힌 자들 
(9:12)

     어떤 사람은 재림 때 예정된 축복을 얼마간 알아볼 수 있고, 주님이 그의 죽음으로 사신 광대한 축복을 부여하시기 위하여 오신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마지막 제안을 깨닫지 못한다. 즉 부패에 감금(사망) 가운데 있는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은 재림 때 비교적 덜 완전하게 죽은 사람들(사라 남아있을 사람들. 8:22, 9:60 참고.) 

     못지않게 메시아의 영광스러운 통칭에 관심을 같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그 자신의 귀중한 피로 사신 축복과 기회를 가져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년시대에 무덤 속에 있지 않는 사람들뿐이 아니라, 무덤 속에 있는 그 모든 사람의 축복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관해서 우리가 이 제목에 대한 주님의 증언을 더욱 연구하면 충분한 증명을 발견할 것이다.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을 "소망을 품은 갇힌 자들"(9:12)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의 해방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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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이 창조된 이후 6천년 동안 지구상에 살아온 인간의 수는 1 4 30억 가량이라고 견적되고 있다. 이들 중, 하나님의 성도의 수는 이성으로 계산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견적으로 10억보다 적을 것이다. 이 대강의 견적은 "사람들 가운데 주신 이름들 중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하늘 아래 없는" 유일한 이름 ( 4:12)에 믿음과 소망이 없이 죽음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수, 1 4 20 (142,000,000,000)의 막대한 총계를 남길 것이다

     참으로, 이들 중의 막대한 대다수가 예수님을 전혀 알거나 들어 본적이 없었으며, 그들이 들어 본적이 없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우리 물어봅시다. 숫자가 전혀 부적당한 관념을 주는 이 방대한 무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사정이 어떠며 어떻게 될 것일까? 그들의 사정과 상황들을 미리 아셨음에 틀림이 없으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아무런 예비를 하시지 않으셨을까?

     아니 그의 자녀들이 주장하듯이, 많은 희망 없는 영원한 고통을 주기 위하여 그가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비참하고 무자비한 예비를 하셨는가

     아니 그가 그들을 위해서 아직 그의 계획의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넓이 가운데 그 유일한 이름을 모두가 알게 되고, 조건들에게 순종하게 되어 영생을 즐기는 기회를 준비하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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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사려있는 교인들마다 그 자신에게 질문하며, 진실하고 여호와의 성품과 조화를 이루는 답변을 알려고 갈망하는 이런 질문들의 여러 가지 응답들이 있다.

무신론자 (Atheism)의 응답- 그들은 영원히 죽어있다. 금후란 말이 없다. 그들은 결코 다시 살지 않을 것이다.

칼빈 (Calvinism) 주의자의 응답- 그들은 구원을 받도록 택하심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은 잃어버리도록 (지옥에 가도록운명을 미리 정하셨다. 그래서 소망이 없이, 언제나 ¸Ó¹«¸¦ 곳에서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서 몸부림치면서 그들이 지금 거기에 있다.

¾Æ¸£¹Ì´Ï¾È(Arminianism) ÁÖÀÇÀÇ ÀÀ´ä- Çϳª´Ô²²¼­ ¹«ÁöÇÔÀ» ÂüÀÛÇÏ¿© ±×µéÀÇ ¸¹Àº ¼ö¸¦ ¿ë¼­ÇÏ½Å´Ù°í ¿ì¸®´Â ¹Ï´Â´Ù. ±×µéÀÌ ¾Æ´Â ÇÑ ÃÖ¼±À» ´Ù ÇÑ»ç¶÷µéÀº ±×µéÀÌ ¿¹¼ö´Ô ¸»¾¸À» µé¾î º» ÀûÀÌ ¾øÀ»Áö¶óµµ È®½ÇÈ÷ ¡°Ã³À½ ³­ÀÚµéÀÇ ±³È¸‚(È÷ 12:23)ÀÇ ÇÑ ºÎºÐÀÌ µÉ °ÍÀ̶ó°í ÇÑ´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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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마지막 견해에, 모든 기독교의 교파들의 대부분이 (어떤 교리들은 그와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동의하고 있다. 그 동기는 어떤 다른 견해는 하나님 편의 공정과 화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에서이다

     그러나 성서에서 이 마지막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가? 무지함이 구원의 근거라고 성서에서 가르치는가? 아니다. 성서에서 언급한 구원의 오직 근거는 우리의 구속자이시고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참으로, 이 은혜로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2:8)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이 전 기독교 제도의 근원적인 원칙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사도들이 응답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라고 했다.( 16:30,31) 

     "사람들 가운데 주신 이름들 중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하늘 아래 없다." (4: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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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바울은 사람이 믿을 수 있기 전에 복음(좋은 소식)을 들어야 한다고 추론한다. 말하기를, "하지만, 믿음을 둔 일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또한 들어 본 일이 없는 분에게 어떻게 마음을 두겠습니까?" (10:14)

     어떤 사람은 주장하기를, 바울이"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 2:14)라고 말할 때, 무지함이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이에서 그들은 그들의 양심이 공급하는 율법이 그들이 의롭다고 인정하는데 충분하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잘못 ÀÌÇØÇÏ°í ÀÖ´Ù. ¡°바울의 논지는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유죄하며" ( 3:19) 기록된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정죄 되었다고 한다 양심의 빛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지 않았다.

      그 양심의 빛이 그들을 용서했거나 비난했거나 이 사실은 마치 기록된 율법이 있는 유대인들이 그 율법으로 정죄 되었든 바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온전함에 못 미쳤으며, 삶을 얻기에 부족하였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0)는 이유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준 율법은 그들의 약함을 드러내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그 자신들이 의롭다고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유대인에게 보여줄 목적이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그(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되지 못할 것" 이기 때문이다. ( 3:20) 

     기록된 율법은 유대인들을 정죄하였으며 이방인들은 그들을 정죄하기에 충분한 양심의 빛을 가졌다. 이렇게 생존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모든 입을 막았고, 온 세상은 하나님 앞에 유죄하다.

¸¹Àº °¡µ¶±³ÀεéÀº Çϳª´Ô²²¼­ ¹«ÁöÇÑ »ç¶÷µéÀ» Á¤ÁËÇϽÃÁö ¾ÊÀ» °ÍÀ̶ó°í Ʋ¸®°Ô ¸»ÇÑ´Ù.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한 가지 점에서 잘못 내디디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 모두를 위반한 사람이 되고, 율법계약으로 약속된 어느 축복이든 주장할 수 없다는 야고보서 (2:10)의 말씀을 기억하면, 우리는 "의로운 사람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 (3:10)란 말씀을 깨닫게 된다. 단 한 분을 제외하고는, 정죄된 사람은 공적 있는 일로서는 어느 하나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무지함을 구원의 기초라고 내 세우는 것은 동등하게 무익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성서는 사람을 구원할 각 소망의 문들을 다 닫는다. 무지함이 어느 한사람도 믿음과 순종의 보답에 자격을 줄 수 없다.

Çϳª´Ô²²¼­´Â º¸´Ù ´õ ÁÁÀº ¹æ¹ýÀ¸·Î ¸ðµç »ç¶÷À» À§ÇÑ ÃູÀ» °¡Áö°í °è½Ã´Ù.

만유의 회복에 관한 
예언자의 증언

     많은 기독교인들은 수백만의 무지한 유아들과 미개인들이 영원히 구원을 잃게 될 것(영원히 희망 없는 고통 받는 곳으로 보내진다고 그들이 배웠음)이라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이 성경 말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무지한 사람들을 정죄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들의 관대한 마음과 그들이 하나님께서 선량하심을 감지하는 것에 감탄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성경의 선언을 버리거나 무시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함을 통해서 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축복을 가지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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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Ì°³Àε鿡°Ô ¾î¶°ÇÑ ÀÏÀÌ ÀϾ °ÍÀΰ¡?

     그러나 이 행위들이 그들이 말한 신념과 일치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이 그들의 무지함 때문에 구원받게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공언하지만, 그들은 계속 수천의 귀중한 인명과 수백만 불의 돈을 희생할 정도로 미개인에게 전도사들을 보낸다

     만일 그 모두나 그 절반만이라도 무지함으로 구원 될 것이라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주기 위하여 전도사들을 보내는 것은 그들에게 명확한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도사들이 그들에게 갈 때 천 명 중에 오직 약 한 명만이 믿기 때문이다

     만일 이 관념이 옳은 것이라면, 그들을 무지함에 남아있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그러면 훨씬 더 많은 비율이 구원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방면의 논거를 계속하면,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무지함 가운데 남겨 두셨다면, 모두가 구원 될 것이라고 우리가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강림과 죽음이 헛되고, 사도들과 성도들의 전도하는 것과 고통당하는 것이 헛되었으며, 소위 복음이라고 불리는 것이 좋은 소식이 되는 대신, 매우 나쁜 소식이다

     각 개인의 영원한 운명이 그가 존재도 하기 전에, 불변하게 고정되어 있다고 하는 칼빈주의 (Calvinistic)나 운명론의 견해 같은 택하심을 신봉하는 그들을 전도사로 보내는 것은 더욱 더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이다.

ƯÁ¤ÇÑ ¶§¿¡ ¿ÏÀüÇÑ Áö½Ä°ú ÀÌÇظ¦ °®°Ô µÉ °ÍÀÌ´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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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전도사 정신으로 가득한 성경은 여러 가지 구원의 길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한 길은 믿음으로, 또 하나는 행위로, 또 다른 하나는 무지함으로 구원.

     성경은 하나님께 불명예를 초래하는 운명론도 가르치고 있지 않다. 성경은 인류에게 온갖 다른 구원희망의 문이 닫힌 것을 보여주는가 하면, 성경은 하나의 문, 유일의 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으며, 누구라도 원하면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영생에 들어가는 축복된 특권의 진가를 지금 깨닫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ÀûÀýÇÑ ¶§¿¡ 완전한 지식과 이해를 갖도록 교육을 받게 될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누구도 정죄된 인류가 모두 하나님께 올 수 있는 유일의 길은 공적 있는 일이나 무지함이 아니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의 공로 안에 믿음으로서만 이다. (벧전 1:19, 1:29) 이것이 복음, "모든 사람에게"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이다. (2:10)

Àΰ£ÀÌ ¿Ö °íÅëÀ» °Þ´Â óÁö¿¡ ³õ¿© 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이들을 검토해보자.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의 해명은 하나님 당신께 남기자. 일천 420억의 인간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아보자.

     그들이 어떻게 되었든지, 그들이 지금 고통의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의 행실대로 갚아주시기 전에는 (16:27) 충분하고 완전한 유업의 상을 교회에게 주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뿐이 아니라, 불의한 사람들도 그 때에 역시 그들의 처벌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을 성서는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µéÀÇ ÇöÀçÀÇ »óÅ°¡ ¹«¾ùÀÌµç ±×°ÍÀÌ ±×µéÀÇ ¿ÏÀüÇÑ º¸´äÀÏ ¼ö°¡ ¾ø´Ù. ¿Ö³ÄÇÏ¸é º£µå·Î°¡ ¸»Çϱ⸦, ¡°ÁÖ²²¼­ ºÒÀÇÇÑ »ç¶÷µéÀº ½ÉÆÇ ³¯¿¡ ²÷¾î¹ö¸®±â À§ÇÏ¿© º¸ÀüÇØ µÎ½Ç ÁÙ ¾Æ½Ê½Ã¿À"(º¦ÈÄ 2:9) ±×¸®°í ÁÖ²²¼­ ±×·¸°Ô ÇÏ½Ç °ÍÀ̱⠶§¹®ÀÌ´Ù.

Çϳª´ÔÀº »ç¶ûÀ̽ô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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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렇게 많은 우리 동료 피조물들이 어느 때건 구원에 필요한 지식이 결핍하기 때문에 구원을 놓쳐버려야 한다는 생각은 한 불꽃같은 사랑이나 동정을 가진 모두에게는 참으로 슬플 것이다. 그밖에 이 모든 것과 조화하기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이는 수많은 성서들도 역시 있다.

     우리 살펴봅시다. 앞으로 오는 시대에 회복을 통한 모든 희망을 버리고 과거와 현재만이 유일의 기회라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4:8, 3:16)

      만일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처럼 많이 사랑하셨다면 그는 믿는 사람들만 구원받게 하실 뿐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믿게끔 듣도록 예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을까?

¸ðµç Àΰ£ÀÌ ¾ÆÁ÷ ±³È­µÇÁö ¾Ê°í ÀÖ´Ù.

     또 우리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다." (1:9)함을 읽을 때, 우리의 관찰은 그와 다르다. 모든 인간이 교화되지 않았다. 우리 주님이 지상의 수십억 중 소수 이상을 계몽 하셨다고 볼 수 없다

     이 비교적 계몽된 시대에도 수백만의 미개인은 이런 교화의 흔적을 나타내지 않는다. 과거 시대에 소돔 족들 (Sodomites) 이나 다른 많은 무리들도 마찬가지였다.

±¸¼ÓÀÌ ½ÇÆп´´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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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½Ã¿À! ³»°¡ ¸ðµç »ç¶÷¿¡°Ô Å« ±â»ÝÀÌ µÉ ÁÁÀº ¼Ò½ÄÀ» ¿©·¯ºÐ¿¡°Ô ¼±Æ÷ÇÕ´Ï´Ù.¡± (´ª 2:10)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 ( 2:9) 그러나 만일 그가 일천 4 30억 명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는데, 어떠한 근거로 그의 희생이 10억 명에게만 효험이 되었다면, 구속이 비교적으로 실패였지 않은가

     그러면 그 경우에 사도의 말씀이 너무 광범한 것이 아닌가? 또 우리는 "보시오! 내가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을 여러분에게 ¼±Æ÷ ÇÕ´Ï´Ù" ( 2:10)라고 읽는데,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적은 무리"에게만 좋은 소식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 못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보면, 천사들이 그들의 예언의 친절과 범위를 과장한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그들이 공표한 메시아가 성취할 일의 중요성을 과대평가 한 것이 아닌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½ºµµÀÇ Á×À½¿¡¼­ ¸ðµç »ç¶÷ÀÌ ÇýÅÃÀ» ÀÔÀ»±î?

     또 다른 말씀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주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죄물로 주셨으니." (딛전 2:5,6)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물이라고요?

     그러면 왜 포함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얼마간의 혜택을 입어서는 안 되는가? 왜 모두가 믿게 그 진리를 알게 해서는 안 되는가?

¿­¼è´Â ¼ÓÁ˹°ÀÌ´Ù: ƯÁ¤ÇÑ ¶§¿¡ Áõ°Å µÉ °ÍÀ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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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결의 열쇠 없이는 이 말씀이 얼마나 불명료하고, 얼마나 불일치하게 보이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여는 열쇠를 발견하면, 이 본문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를 선언한다. 이 열쇠는 마지막으로 인용된 성서 구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발견된다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속죄물로 주셨으니 ±â¾àÀÌ À̸£¸é 증거 할 것이라." (딛전 2:6)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ÀûÀýÇÑ ¶§¸¦ 정해놓고 계신다. 그가 그것을 이들에게 그들의 과거 생애에 증언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증거 하시지 않으셨으므로 그것은 미래가 그들의 ÀûÀýÇÑ ¶§ÀÓ¿¡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참 교회에 속하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그리고 하나님 왕국의 영예를 같이 나누게 될 그들에게는 현재가 듣는 "ÀûÀýÇÑ ¶§" 이다

     그래서 지금 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듣고 유의하게 하라. 그러면 그는 적절히 축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물을 갚으셨지만, 그 후 여러 해 동안은 그것(증언)을 듣는 우리의 ¡°ÀûÀýÇÑ ¶§¡±°¡ 아니었고, 오직 그에 올바를 이해만이 책임을 초래했으며, 이 책임은 오직 우리 능력과 이해 정도 만큼이다

     같은 원리가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것(딛전 2:6)이 하나님의 특정한 때에 모든 사람에게 증언 될 것이며, 그것으로 모든 사람이 그 때 믿고 축복을 받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ðµç Èñ¸ÁÀÌ Á×À½¿¡¼­ ³¡ÀÌ ³ª´Â°¡?

     일반적인 견해는 죽음이 모든 보호관찰을 끝낸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는 성서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만일 죽음이 세상의 무지한 일반대중을 위한 모든 소망을 끝낸다면, 위의 모든 성서들과 더 많은 성서들이 무의미하거나 보다 더 나쁠 것이다

     일반적으로 받아드린 이 견해를 증명하기 위하여 인용한 성서 하나는 "나무는 .....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대로 있게 한다." (11:3)이다. 만일 이 구절이 인간의 미래에 어떠한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무덤에 들어갈 때 그의 상태가 어떤 것이든 그가 무덤에서 깨어날 때까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절이 다음 장들에서 보여주게 될 바와 같이, 그 제목에 관계되는 모든 성서들의 균일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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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무지함 때문에 인간을 구하실 것을 제안하시지 않고, "그의 뜻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고" (딛전 2:4) 태반의 인류가 무지함 가운데 죽으며, "네가 들어갈 곳인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9:10)라고 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지식, 믿음,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죽은 사람들을 깨우시는 것을 예비 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계획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순위대로 될 것입니다."

     첫 열매는 복음 교회, 신부,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후 천년시대에 그가 임재 하시는(오심은 오역) 그 천년 동안에 그리스도의 자녀가 될 사람들 모두이다. (고전 15:22,23) 이때가 작은 자에서 큰 자까지 그를 알게 되는 모두 ( 8:11)를 위한 주님의 특정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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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첫 사람 아담을 통하여 있게 되었으므로, 죽은 사람이 살게 되는 것도 그리스도, 둘 째 아담을 통하여 있게 되었다. (고전 15:21). 첫 사람 아담 안에 속해 있음을 통하여 인류가 잃은 모든 것이 둘 째 아담을 깊이 믿는 사람들에게 회복하게 되어있다

     아담에게 모자랐던, 악을 경험한 유리한 점을 가지고 죽은 사람이 깨어날 때, 하나님의 선물로 구속을 감사히 받아드리는 사람들은 최초의 순종조건에서 영구히 계속 살 수 있다. 평화의 왕의 의로우신 통치 밑에 완전한 순종이 요구될 것이며 완전한 순종을 할 능력을 줄 것이다. 이것이 세상에 제공한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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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재림은 명백히 교회와 세상의 희망

     유니버설리스트 (Universalists) 보편 구제설을 신봉하는 사람들)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무시된 또 하나의 다른 본문을 이제 고려하자. 우리는 유니버설리스트가 아니라도 하나님 말씀의 모든 증언을 이용하고, 믿고 기뻐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사람들의 구세주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둔다." (딛전 4:10)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것이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각별히"절대적으로"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들의 본의에 상반하여 그들의 의지나 선택의 자유와 갈등할 그러한 구원이 아니다. "내가 오늘날 생명과 죽음을 당신 앞에 두었으니, 당신이 계속 살려면, 생명을 택하라." (30:19)

     ½Ã¸Þ¿Â(Simeon)Àº ÀÌ µÎ °¡ÁöÀÇ ±¸¿øÀ» ÀÌ¿Í °°ÀÌ ¸»Çϸ鼭 ´ëÁ¶Çß´Ù. ¡°³» ´«ÀÌ ÁÖÀÇ ±¸¿øÀ» º¸¾Ò±â ¶§¹®ÀÔ´Ï´Ù..... ÀÌ¹æ »ç¶÷µé¿¡°Ô¼­ º£ÀÏÀ» ¹þ±â±â À§ÇÑ ºûÀ̸ç ÁÖÀÇ ¹é¼º À̽º¶ó¿¤(Âü À̽º¶ó¿¤ »ç¶÷µé)ÀÇ ¿µ±¤ÀÔ´Ï´Ù.
"(´ª 2:30,32) Áߺ¸ÀÚ°¡ µÇ½Ã´Â ¿¹¼ö ±×¸®½ºµµ°¡ ¿Â Àηù¸¦ À§Çؼ­ ±× ÀÚ½ÅÀ» ¼ÓÁ˹°·Î ÁֽŠ»ç½ÇÀº ±â¾àÀÌ À̸£¸é ¸ðµç »ç¶÷¿¡°Ô Áõ¾ðÇÏ°Ô µÇ¾îÀÖ´Ù´Â »ç½ÇÀº »çµµ ¹Ù¿ïÀÌ ÇÑ ¸»¾¸°ú ÀÏÄ¡ÇÑ´Ù.

     이것은 그들 편의 신념이나 의지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미칠 사실이다. 구주의 이 좋은 소식이 온 백성에게 미칠 것이나 (2:10,11) 죄와 죽음에서 특별한 구원은 그의 백성인 그를 깊이 믿는 사람들에게만 올 것이다. (1:21)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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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우리는 구원에 다음 두 가지 단계를 깨닫는다:

(1) 일반적 구원- 각 개인에게 마다 올 일반적 구원은 참 빛에서 비취는 빛과 생명을 선택하는 기회를 필요로 한다. 인류중 대다수가 무덤 속에 있기 때문에 구주의 좋은 소식을 그들에게 증언해 주기 위하여 그들을 무덤에서 깨내어 나오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 특별한 구원- 신자들이 희망 중에 현재 누리고 있는 특별한 구원 (8:24)과 천년시대에 "그 날에 믿는"사람들에게도 역시 실현될 실재는 죄의 종에서 그리고 죽음의 부패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가지는 완전한 해방이다.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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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모든 축복의 경지에 이름은 그리스도 왕국의 율법을 마음에서 울어나는 순종함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신속하고 완전한 경지에 이름은 왕과 그의 사랑의 율법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지적한다

     만일 진리로 교화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인간 완벽(실제로나 간주된)으로 회복된 어느 누구라도 "겁쟁이들"이 되고, "뒤로 물러나는" (10:38,39)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 (21:8)과 함께 백성들 사이에서 멸망 받을 것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3:23)

     이렇게 지금까지의 이 모든 어려운 본문들이 ¡°±â¾àÀÌ À̸£¸é 증언하게 되어있다" 는 말씀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참 빛이 ±â¾àÀÌ À̸£¸é (딛전 2:6) 세상에 태어난 각 모든 사람에게 비췰 것이다. ( 1:9) ±â¾àÀÌ À̸£¸é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일 것이다. 이 성서들은 비틀지 않고는 이밖에는 다른 용도가 없다. 바울은 로마서 5:18,19에서 이와 같은 논지를 강조하여 반복한다. 그는 논하기를

(1)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죽음의 판결을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과 죽기까지의 순종은 의롭다고 인정되는 기초가 되었다

(2) 첫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생명을 잃은 것 같이, 둘 째 아담을 받아드림으로, 개인의 결함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가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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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 만유의 회복을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3:19-21) 그들은 모두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에스겔(Ezekiel)은 마른 뼈들이 가득 찬 골짜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뼈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온 집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를,

 Çϳª´ÔÀÌ À̽º¶ó¿¤¿¡°Ô ¸»¾¸ÇϽñ⸦, ¡°³» ¹é¼ºµé¾Æ ³»°¡ ³ÊÈñ ¹«´ýÀ» ¿­°í, (°Ö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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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È£¿Í°¡ ÀÌ ÀÏÀ» ¸»ÇÏ°í ÀÌ·é ÁÙÀ» ³ÊÈñ°¡ ¾Ë¸®¶ó ¿©È£¿ÍÀÇ ¸»À̴϶ó.¡±  (°Ö 37:11-14)

     "내 백성아, 이제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여 이스라엘의 토지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너희는 반드시 내가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넣어 주리니, 너희가 반드시 살아날 것이며 또 내가 너희를 너희 토지에 정착시키겠다. 그리하여 너희는 나 여호와가 말하고 그대로 행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3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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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말도 이것과 동의한다. (11:25,26) "이 비밀은 이방 사람들의 온전한 수(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일단, 그리스도의 신부)가 들어오기까지, 감각이 둔해지는 일이 이스라엘에게 부분적으로 있게 된다는 것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 즉 그들의 버림받은 상태에서 돌이키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인정하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2)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선택되는 동안 그 은총에서 버림받았으나 그 일이 이루어지는 때 다시 복권될 것이다. (28-33)   예언자들의 말씀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그 땅에 다시 심어주시고, 다시는 뽑혀지지 않게 하실 뜻으로 가득 차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눈을 그들 위에 좋게 두어, 틀림없이 그들을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세우겠고, 허물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심겠고, 뽑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나를 곧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아는 마음을 주겠다. 그래서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들이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24:5-7, 31:28, 32:40-42, 33:6-16)

     이러한 사실들은 단지 전의 바빌론, 시리아 (Babylon, Syria), 등에서 사로잡힘에서 회복만을 언급할 수 없다. 그 이래 그들이 뿌리째 뽑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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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 그들이 다시는 아버지가 익지 않은 포도를 먹었는데,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각자(죽는 자)는 자기의 잘못 때문에 죽을 것이다." (31:29,30) 이것은 지금의 경우가 아니다. 각자는 지금 자기 죄 때문에 죽지 않고, 아담의 죄 때문에 죽는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고전 15:22)

     아담이 죄의 익지 않은 포도를 먹었고 우리 조상들이 그것들을 계속 먹어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병과 불행을 더욱 일으켰으며 이렇게 처벌, 죽음을 촉진시켰다. "각자(죽는 자) 자기의 죄악으로 죽게 되는" 날은 단지 천년시대(만유의 회복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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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축복의 예언이나 약속들 중 다수는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들이 전형적인 백성이며, 그 때문에 약속을 그들에게 주고, 어떤 때는 그 자신들에게 특별한 적용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 국민이 상징하는 모든 세상 인류에게도 역시 더 넓은 적용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여야 한다.

     이스라엘이 한 나라로서 모든 세상의 전형이었던 동안은, 이스라엘의 제사직은 택함 받은 "적은 무리" 곧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인 "왕 겸 제사장"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한 제사들과 정결케 하는 일들과 속죄들은 이스라엘을 포함해서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요일 2:2) "더 나은 제물" 과 정식으로 정결케 하는 일들과 참된 속죄를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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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그럴 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들 이름을 언급하시며 그들의 회복을 약속하신다. 강력한 실례로서 우리는 소돔 사람들 (Sodomites)을 언급한다. 만일 우리가 소돔 사람들의 회복을 명백히 가르친다는 것을 발견하게되면,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모든 인류를 위한 만유 회복의 이 훌륭한 가르침의 진리를 우리가 확신한다고 느낄 수 있다.

     왜 소돔 사람들이라 해서 이스라엘이나, 우리 중 누구나 마찬가지로 완전과 영생에 이르는 기회를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실로 그들은 의롭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지금 이 복음(좋은 소식)을 듣는 우리도 의롭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귀여 된 의를 제외하고는 "의로운 사람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 (3:10)라고 하셨다. 우리 주님 자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그들의 사악함 때문에 모두를 멸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 많이 가진 유대인들보다 더 큰 죄인들이 아니었다고 하셨다. ( 19:24, 17:29)

     가버나움 (Capernaum)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그가 말씀하시기를, "네 가운데 행한 강력한 일들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바로 이 날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11:23)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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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ÀÌ·¸°Ô ¿ì¸® ÁÖ´ÔÀº ¼Òµ¼¿¡ °ÅÁÖÇÏ´Â »ç¶÷µéÀÌ ÃæºÐÇÑ ±âȸ¸¦ °®Áö ¸øÇÏ¿´´Ù´Â °ÍÀ» °¡¸£Ä¡½Ã°í, ¡°±×·¯¹Ç·Î ³»°¡ ³ÊÈñ¿¡°Ô ¸»Çϴµ¥, ½ÉÆÇ ³¯¿¡ ¼Òµ¼ ¶¥ÀÌ ³Êº¸´Ù ´õ °ßµð±â ½¬¿ï °ÍÀÌ´Ù.¡°(¸¶ 11:24)¶ó´Â ¸»¾¸À» ºÎ¾ðÇϼÌÀ» ¶§ ±×´Â ±×µé¿¡°Ô ±×·¯ÇÑ ±âȸ¸¦ º¸ÀåÇϽŴٴ °Íµµ °¡¸£Ä¡½Å´Ù.

     심판 날의 성격과 그 날 일은 다음 페이지에서 설명하겠다. 여기서 우리가 단지 주의를 환기하려고 하는 것은 가버나움이 심판 날에 견디기 쉬울 것이며, 소돔 땅은 아직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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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가버나움과 모든 이스라엘이 예수님 피로 인을 찍은 "새 계약" 밑에 잊지 않고 축복을 받게 되어 있으면 왜 소돔 사람들도 "땅의 모든 가족" 중에 하나로 역시 축복을 받아서는 안 될까?

     그들은 확실히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회복을 말씀하신 예수님 때 보다 여러 세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리셔 그들을 모두 멸하셨음" 으로, 그것은 그들이 죽어 잠든 데서 깨어 일어나고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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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에스겔 16:48-63 의 예언을 고찰해 보기로 합시다. 면밀히 읽어보시오.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관해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이웃 사마리아와 비교하신다. 소돔 사람들과도 역시 비교하시면서 소돔을 "내가 합당하다고 본 대로? 그들을 제거해 버렸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소돔을 멸망케 하시고, 소돔보다도 더 죄를 범한 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은 채 내버려두게 묵인하시는 점에서, 예수님이나 예언자나 하나님의 관계의 외관상 불공평함에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 모든 것은 ¡°ÀûÀýÇÑ ¶§¡±¿¡ 하나님의 훌륭한 계획이 명시될 때 분명해질 것이다.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다고 보신" 것을 단지 진술하고, 예수님께서 소돔 사람들은 더 많은 범죄를 범한 다른 사람들 보다 심판 날에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부언하신다.

     그러나 죽음이 모든 보호관찰을 끝내고, 그 후에는 진리를 배워서, 그것에 순종하는 기회를 아무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하시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문의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을 앎으로 구원을 받는 기회를 주시지 않고, 이 사람들을 죽게 하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셨을까?

     응답은 그들의 특정한 때가 아직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때에 그들을 무덤에서 깨어나게 하고, 진리를 배우게 하고, 따라서 약속하신 ""를 통해서 땅의 모든 가족과 더불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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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고려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제 가거라. 나는 아말렉을 치고 그가 가진 모든 것과 함께 그를 멸망시켜야 한다. 너는 그에게 동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너는 그들을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와 양,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야 한다."(삼상 15:3)라고 말씀하시며, 아말렉 사람(Amalekites)이나 다른 백성들을 죽이라고 허락하실 뿐이 아니라, 명하신 사랑이신 하나님의 그들과의 관계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외관상의 무모한 생명의 파멸은 하나님의 계획의 체계적인 순서와 하나님의 계획의 모든 면모를 성취하기 위한 ¡°ÀûÀýÇÑ ¶§"¿Í 인류 각 인원이 그 계획안에 위치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보게 될 때까지는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의 성품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제 아말렉, 소돔 사람들과 다른 족속들은 하나님의 정당한 의분의 실례와 악인들을 마침내 완전히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정의 실례로 공표 되었던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실례들은 그들의 심판이나 시험의 날이 올 때, 다른 사람들에게 뿐이 아니라, 그 자신들에게도 역시 유익이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이 병이나 재앙으로 죽는 것은 그런 방법으로 죽는 거나 매한가지다. 그들은 다만 악을 아는 것을 익히고 있었기 ¶§¹®¿¡, ¶§°¡ Â÷¼­  ½ÃÇèÀ» Ä¡¸¦ ÀûÀýÇÑ ¶§°¡ À̸£·¶À» ¶§ 그들이 의를 배울 수 있게되고, 선을 판별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별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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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에스겔의 예언을 더 고찰해 보십시다. 이스라엘을 소돔과 사마리아와 비교하고, 이스라엘이 가장 비난을 받을만하다고 ( 16:48-52) 선언하신 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의 Æ÷·Î·Î µÈ 자들" 소돔과 그 딸린 성읍들의 Æ÷·Î·Î µÈ 자들 그리고 사마리아와 그 딸린성읍들의 Æ÷·Î·Î µÈ 자들을 모으겠다.

     "내가 또한 너의 Æ÷·Î·Î µÈ 자들을 그들 가운데 모으겠다."( 16:53) 포로로 됨이란 말은 다름이 아니고 바로 그들이 죽음가운데 포로로 됨을 지시한다. 여기서 언급된 그들은 그 당시에 죽었기 때문이다. 죽음가운데서 모두가 포로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무덤의 문을 여시고, Æ÷·Î·Î µÈ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오신다. ( 61:1, 9:11) 55절에서 이것을 "너희 자매들이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부른다. 곧 만유의 회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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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은 더 밝은 빛과 앎에서, 그 자신들의 범죄와 나약함을 용서받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기꺼이 받아드리고 있으며, 같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고 하는( 2:9) 사도 바울의 말을 시인하긴 하지만, 같은 은혜가 새 계약 밑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생각할 줄을 모른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은 이 예언에서 ( 16:53) 소돔 사람들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기꺼이 다시 데려오시려고 한다지만, 아무 쪽이든 회복하실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암시한다면서,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풍자적으로 유대인에게 말씀하시고 있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다음절들이 어떻게 이 관념과 일치 하는가 봅시다. "그러나 내가" 바로 내가 너의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미래), 너를 위하여 영구히 지속되는 계약을 굳게 세우겠다(미래). 너는 너의 자매들 곧 너의 언니들과 아우들을 마지 할 때에 네 길을 기억하고 (미래)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 내가, 바로 내가 너와 내 계약을 굳게 세우리니 (미래)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하여 네가 행한 모든 일의 속죄를 베풀 때, 네가 기억하고 참으로 부끄러워하며 네 부끄러움 때문에 다시는 네 입을 열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다." ( 16:60, 61a ,62, 63)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약속을 이렇게 서명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참되시다는 것에 그들의 인장을 찍은 모든 사람은 자신을 갖고 확실성이 있다는 데 기뻐할 수 있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의 귀중한 피로 계약에 인장을 찍게 되어있는 새 계약의 축복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 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은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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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에 바울은 그의 증언을 추가한다. 이르기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산 자나 죽은 자나) 구원을 얻으리라(무지함에서 회복)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된바와 같이" 구세주가 시온에서 나와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행위를 제거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에 내가 그들과 맺는 계약이다, .... 그들은 조상들 때문에 사랑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은 그가 후회하실 일들이 아닙니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 1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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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소돔 사람, 사마리아 사람,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서 그의 ¡°ÀûÀýÇÑ ¶§"¿¡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실 때, 부끄러워하고 당황하게 될 것에 우리는 놀랄 필요가 없다. 그렇다. 지금 하나님 자녀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과 그의 사려와 계획들이 그들의 것 보다 얼마나 더 우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 당황하고 깜짝 놀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축복은 단지 선택된 교회만을 위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으나,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넓다는 것과 그가 교회에게 "귀중하고도" 매우 웅대한 약속들"을 주셨지만" 그는 그가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속하신 세상을 위하여도 풍부한 예비를 마련해 오셨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깨닫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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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유대인에게만 준 것이고, 그들만을 위한 것으로 상상하는 점에서 매우 비슷한 오해를 하였다. 그러나 "ÀûÀýÇÑ ¶§"°¡ 와서 이방인들이 은혜를 받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의 더 넓은 증거를 보고 기뻐할 만큼 충분히 마음이 넓은 이스라엘의 택함 받은 자들은 증가된 은혜를 함께 받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편견과 인간 전통으로 판단력을 잃게 되었다.

     온 세상을 위한 그 빛의 은혜로운 이점을 가지고 있는 천년시대의 여명의 빛을 지금 보는 교인들은 그들이 진전하는 그 빛의 반대편에 들어서, 잠시 그 빛의 영광과 축복을 깨닫지 못하게 되지 않도록 유의합시다.

     장래에 많은 수의 축복을 위하여 지금 소수의 선택을 위한 하나님의 이 영광스러운 계획은 칼빈주의와 알메니안주의 (Calvinism and Arminianism) 의 두 대립하는 견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 같은 이 진리의 왜곡과 얼마나 다른가.

     칼빈주의는 값없이 주시는 은혜라는 성경교리를 부정하고, 택하심이라는 영광스러운 교리를 서투르게 곡해한다. 알메니안주의는 택하심의 교리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충만한 축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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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주의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전지 하시다. 그는 종말을 처음부터 아셨다. 모든 그의 목적이 성취될 때 그가 극소수, 즉 교회이외에는 결코 아무도 구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이 극소수들을 영원히 구원하도록 그가 택하시고 미리 정하셨다. 모든 다른 사람들은 영원한 고통으로 가도록 그가 또 택하고 미리 정하셨다. "예로부터 모든 일이 하나님께 알려진 일" ( 15:18)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 견해는 좋은 면모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지를 인정한다. 위대함의 두 가지 본질, 즉 사랑과 공정이 결핍하다는 것을 제외하고, 이 견해는 위대하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이상일 것이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영원한 고통의 운명에 처한 천 4 20억의 피조물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는 점에서, 사랑이나 공정 아무 하나도 예증 되어있지 않으며, 그래서 그의 사랑이란 단언이 조롱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며 공정이 그의 왕좌의 기초이므로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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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메니안 주의는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다. 인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는 점에서, 그는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오직 선만을 뜻하셨다. 그러나 사탄이 첫 부부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왔다. ( 5:12)

     그리고 그 후 내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의 적에서 구해내시려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오시고, 그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다. 지금 6 천년 후에, 복음이 인류의 오직 매우 적은 비율에게만 전파되었지만, 아직 또 다른 6 천년 안에 교회의 활동과 관대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사탄이 끌어들인 악을 제거하게 될 것이므로, 그 때에 살고 있는 모두가 그의 사랑을 적어도 알고, 믿고, 구원받을 기회를 갖게 될 수 있다고 우리는 희망을 갖고 신뢰한다.

     이 견해는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의 사랑과 자비로우신 계획으로 충만하신 존재로 나타내지만, 그의 자비로우신 계획을 성취하시기에 충분한 능력과 선견이 결핍함을 함축한다.

     이것은 그가 지혜와 권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 견해로 보면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하신 자녀의 이익을 위하여 조정하고 고안하는 데에 종사하신 동안에 사탄이 슬며시 들어와 일격으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전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권능을 고갈 하셔도, 아직 살고 있는 나머지 인류가 악을 쉽게 선택한 만큼 선을 택할 기회를 가질 정도까지 만이라도 정의를 복귀하시기 위하여 1 2천년을 소비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견해로는 사탄이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하였기 때문에 과거 6천년의 1 4 20억 인류와 그 다음 6천년의 그 수만큼 더 많은 인류가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도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를 영광으로 구하시는 것에 비해, 사탄은 수천의 인류를 영원한 고통가운데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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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견해는 사탄의 지략과 권세로 된 인간의 관념을 높이고, 하나님께 속한 이 속성에 대한 그들의 판단을 낮추는 것임에 틀림없다. 다윗은 하나님의 존재를 그 반대로 선언했다. "그가 말씀하시자 그렇게 되고, 그가 명하시자 그것이 그처럼 서 있게 되었다." (33:9)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악마에 놀라지도 않으시고, 뒤떨어지지도 않으셨다. 사탄은 그의 계획들을 조금이라도 좌절케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환경의 완전한 주인이시고, 항상 주인으로 군림하셨으며, 종말에는 모든 일이 그의 목적들을 성취하시는데 함께 합력 해온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칼빈 주의와 알메니안 주의가 가르친 바와 같은 택하심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된 교리들은 이성으로나 성경으로 결코 서로 조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훌륭한 성경교리들은 그 여러 시대에 관한 계획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조화되고 아름답다.

     그러면,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그렇게 많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면모들이 미래에 놓여 있다는 것과 우리 주 예수의 재림이 오래 약속되고 오래 기대된 일들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계획하신 첫 단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알림을 덜 받은 유대인이 그의 첫 강림을 기다리고 열망한 것 보다 그의 재림 때를 우리가 한 층 더 진심으로 열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부정, 죽음의 세월이 그가 당시에 발휘하실 권능의 주권으로 종말이 맺게 되고 정의, 진리, 평화가 보편적이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누가 그의 날을 보기를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í ¡°¿ì¸®µµ ÇÔ²² ¿µ±¤½º·´°Ô µÇ±â À§ÇÏ¿© °í³­µµ ´çÇØ¾ß µÉ °ÍÀÔ´Ï´Ù"(·Ò 8:17)¶ó´Â ±ÍÁßÇÑ ¾à¼ÓÀ¸·Î °Ý·Á¸¦ ¹Þ°í, Áö±Ý ±×¸®½ºµµ¿Í ´õºÒ¾î °í³­À» ¹Þ°íÀÖ´Â »ç¶÷ÀÌ ¿ì¸®ÀÇ ±¸¿ø°ú ¿µ±¤À» ¹Þ´Â ³¯ÀÌ °¡±î¿öÁüÀ» ¾Ë¸é¼­, ´©°¡ ÁÖ´ÔÀÌ Á¢±ÙÇϽô ¾î¶°ÇÑ Áõ°Å¿¡µµ ¸Ó¸®¸¦ µé°í ±â»µÇÏÁö ¾ÊÀ»±î¿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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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의 축복하시는 사명과 그의 사랑의 정신에 동조하는 모두는 그의 재림의 온갖 증거를"모든 사람에게 올 큰 기쁨" (2:10)이 다가오는 것처럼 환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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