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11
세 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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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길은 멸망으로

–– 좁은 길은 생명으로

–– 생명이란 무엇인가?

–– 신의 본성

–– 신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과의 관계

–– 좁은 길의 최후에는 보답

–– 위로 부르심은 복음시대에 한정됐음

–– 좁은 길의 어려움과 위험들

–– 거룩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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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소수만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발견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쪽으로 인도하는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 쪽으로 인도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은지!" (7:13,14 Diaglott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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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대로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로가 나서, 거룩한 길이라고 불릴 것이다. 더러운 자는 그리로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 길로 걷는 자를 위하여 있을 것이며, 어리석은 자들은 거기서 서성거리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포식하는 들짐승도 그리로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그런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이며, 구속함을 얻은 사람들이 그곳을 걸어가게 된다." (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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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의 길은 죄와 더불어 더욱 미끄럽고 미끈거려지고 있다.

     위의 성서들에서 이렇게 세 가지 길("넓은 길")에 우리의 주의를 이끈다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이 길은 타락한 인류에게 가장 쉽기 때문에 넓은 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6천년 전에 멸망되도록 정죄된 죄인으로서 아담은 (그리고 인류는 그 안에서 상징되었음) 이 길을 걷기 시작하여, 930 년 후에 그 길의 끝(멸망)에 달했다. 해와 세기가 지나감에 따라 타락의 길은 더욱 더욱 평탄하게 닳아 해어져서, 인류는 더욱 재빨리 멸망으로 달려갔다

     그 길은 죄와 더불어 나날이 더 윤이 나고, 더욱 미끄럽고 미끈거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이 더욱 미끄러워지고 있을 뿐이 아니라, 인류는 나날이 저항력을 잃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인간의 평균수명은 약 35 세다. 지금 인간은 첫 사람보다 9 백년이나 빠르게 그 길의 끝(멸망)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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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년 동안 죄와 죽음이 잔인하게 지배하였다.

     6 천년 동안 인류는 넓은 타락의 길을 한결같이 쫓아갔다. 비교적 겨우 소수만이 그들의 행로를 바꾸고, 걸음을 다시 되돌려 회고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의 이렇게 하려는 노력은 칭찬할만하고 유익한 결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모든 걸음을 다시 하거나, 본래의 완벽에 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6 천년 동안 죄와 죽음이 인류를 잔인하게 지배하고, 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몰았다. 그리고 복음시대 까지 멸망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전 시대에는 희망의 빛이 전형과 그림자 안에 희미하게 보여, 비록 한 소수만이 그 빛을 기쁘게 환호하여 맞고 좇아 행동했다 하더라도, 생명과 불멸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고, 사도들이 구속과 죄의 용서와 더불어 일어나는 멸망에서 부활의 좋은 소식을 선언한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딛후 1:10)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은 생명 -구세주의 공로와 희생에 근거한 모든 인류를 위한 생명으로 회복 -을 드러내며, 이것이 많은 구약성경 전형의 중요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또한 복음교회에게 위로 부르심의 상인 불멸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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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새로운 길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이라고 부르셨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서 달아나는 길이 좋은 소식을 통해서 밝혀졌다 하더라도, 죄로 타락되고 대적(마귀)이 인간의 판단력을 잃게 하였기 때문에 인류의 대다수는 좋은 소식에 유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생존하게되는 상태로 회복된다는 생명의 약속을 지금 감사하게 받아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려져 있고, 이 길을 따라서 헌신한 신자들이 가면 그들은 인간적인 본성 이상으로 더 높은 본성 (영적 본성)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었다. 이 새로운 길을 우리 주님께서 왕 겸 제사장이라고 부르신" 우리를 위해서 열어 주신 것입니다" (10:20)

그 길이 좁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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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은 생명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이 길의 좁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 남아 있기를 차라리 좋아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좁아서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7:14)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 좁은 길과 그것의 위험과 어려움을 숙고하기 전에, 그것이 인도하는 끝인 생명을 유의해 봅시다. 이미 본바와 같이, 생명은 인간의 단계보다 낮을 뿐이 아니라, 높은 단계 여러 가지 단계에서 누릴 수 있다. 생명은 넓고 포괄적인 용어이나, 여기서 우리의 주님께서 사용하신 생명은 신의 본성에 속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생명인 불멸에 관한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불멸은 상이다. 그것을 위해서 달리라고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 하셨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우리자신 속에서 실감할 뿐이 아니라, 낮은 동물과 식물 속에서까지도 그들의 작용을 보며, 더 높은 형태인 천사와 신의 속에 생명의 실재를 알게 되었다.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포괄적인 용어의 뜻을 밝힐 수 있을까?

여호와가 모든 생명의 대 원천이다.

     우리는 모든 것 속에 있는 생명의 비밀의 원천을 발견할 수 없다 해도, 신의 존재인 여호와가 모든 생명의 대 원천이며, 그에게서 이 모든 샘들이 공급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전하게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생물들은 그에게서 유래되며 생명을 위해서 그에게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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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본성은 독립적이고, 무제한하고, 무진장한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 속에 있는 것이나 피조물에 있는 것이나 다 같다. 그것은 한 활기를 돋우는 본질이고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내재하는 본질이며, 피조물 속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떤 원인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의 원인이시거나, 창조자이시거나 원천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상상하듯이 피조물은 아무 점에서나 창조자의 본질이나 본성의 한 부분이나 자손이 아니라, 생명이 불어넣어진 하나님의 수공품이다.

신의 본성

     신의 본성에서만 생명이 독립적이고, 무제한하고, 무진장하고, 언제나 연속적이며, 환경으로 생산되거나 지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므로, 당연히 여호와께서 그의 피조물의 생계를 위해서 그가 명하신 자연 법칙과 양식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직 신의 본성에만 관계되는 이 특성이 불멸이라는 용어로 묘사되어 있다

     전 장에서 보여준 것 같이 불멸은 사망의 면제를 의미하며, 따라서 병과 고통의 면제를 의미한다. 불멸은 신성과 동어로 사용할 수 있다. 마치 태양에서 지구가 빛과 활력을 받는 것 같이, 신의 불멸 원천에서 모든 생명, 축복, 각양 좋은 은사, 및 온전한 선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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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지구에 빛을 주는 대 원천이다.

     태양은 지구에 빛을 주는 대 원천이다. 모든 것을 조명하여 햇빛이 비추는 물체의 본질에 따라서 빛의 색과 색조의 많은 다양성을 나게 한다. 금강석, 벽돌 그리고 여러 가지 종류의 유리에 비추는 그 같은 햇빛은 현저하게 다른 결과를 낳게 한다. 빛은 같으나, 그 빛이 비추는 물체들은 빛을 받아드리고 투과하는 능력에 있어서 다르다

     생명과도 그렇다. 생명은 모두 하나의 무진장한 원천에서 흘러나온다. (oyster)은 생명을 가지고 있으나, 벽돌이 많은 햇빛을 반사 할 수 없듯이, 굴의 유기체의 본질은 많은 생명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있다. 생명의 더 높은 현시의 각각인 짐승, 물고기와 조류 가운데서도 그와 같다. 햇빛 아래 여러 가지 종류의 유리같이, 이 여러 가지 피조물은 그들의 유기체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그들이 소유하는 유기체의 활력을 다르게 나타낸다.

인간은 고유의 생명을 소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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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본성과 인간 
본성과의 관계

     광택 있는 금강석은 빛을 잘 적응하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그 자체 내부에 빛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으며, 그 자체가 마치 소규모의 태양처럼 보인다. "천사보다 조금만 낮게" 만들어진 하나님의 걸작 중에 하나인 사람도 그렇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서 생명을 받아드리고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웅대하게 창조되었고, 결코 희미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어떤 다른 지상의 피조물보다 더 웅대하였다. 이것은 심은 생명력에 있어서 어떤 차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웅대한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강석은 햇빛이 비치는 때를 제외하고는 빛을 반사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생명의 공급이 계속될 때만 생명을 소유하고 줄길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합시다

     인간은 고유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생명의 원천이 아닌 것은 금강석이 빛의 원천이 아닌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무진장한 생명의 공급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다시 말해서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가장 강한 증거들 중에 하나는 죄가 들어간 이래 죽음이 우리 모든 인류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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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에덴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나무들에 접근할 수 있게 준비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두신 그 낙원은 먹기에 좋고 보기에도 탐스러운 "모든 (종류의) 나무"가 풍부하게 공급될 것을 준비하셨다. (2:9,16,17) 

     먹기에 좋은 생명 나무들 중에 한 나무는 금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일시 금지하셨지만, 생명을 완전하게 지탱하는 나무들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게 그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는 범죄 후에만 그 나무들과 분리되었다. 그래서 그 관계로 죽음의 처벌이 발효될 수 있었다. (3:22)

금강석이 빛이 없으면 그것의 아름다움을 잃는 것같이, 하나님 없이는 인간은 생명을 잃는다.

     이렇게 인류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계속되는 생명 공급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마치 금강석의 미가 계속되는 햇빛 공급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 죄가 인간에게서 살 권리를 빼앗았고, 생명 나무 공급이 회수되자 보석(인간)이 광택과 아름다움을 바로 잃기 시작하고, 마침내 살 권리는 그것의 마지막 자취를 무덤 속으로 빼앗긴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옷좀 나방이 먹어치우듯 없애버린다. (39:11) 

     빛을 회수하면 금강석이 그것의 아름다움과 광택을 잃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서 공급을 회수하시면 인간은 생명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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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는 일도 없고...지식도 없다.”

     "땅의 사람이 숨(생명)을 거두면 그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14:10)

     "자기 아들들이 존중히 여김을 받아도 그는 알지 못하고,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는 깨닫지 못합니다."(14:21) "네가 들어갈 곳인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습니다." (9:10) 

     그러나 속죄물을 얻었고(33:24), 그 구세주가 죽음의 처벌을 제공하였으므로, 보석의 아름다움이 회복하게 되고,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때에 다시 창조자의 형상을 완전하게 반영하게 된다. (4:2) 

사람은 회복된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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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죄제물인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에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것입니다."(5:28) 만물의 회복이 있을 것이다. 첫째 회복의 기회를 모두에게 줄 것이며, 구세주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인간 완벽의 달성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좁은 길의 최후에는 보답

     그러나 이것은 좁은 길의 결과로 예수님이 언급하신 보답이 아니다. 다른 성서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다음과 같다: 좁은 길을 택하고 행하는 그들에게 약속하신 보답은 고유의 생명, 오직 신의 본성만 소유할 수 있는 최상의 정도인 생명인 "신의 본성"곧 불멸이다. 얼마나 대단한 희망인가

     감히 우리가 그러한 영광의 높이를 열망할 수 있을까? 명확하고 명백한 초청이 없이는 확실히 어느 누구도 정당히 이렇게 열망 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의 본성은 원래 신의 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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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딛전 6:16)

     디모데전서 6:14-16에서 불멸의 본성이나 신의 본성은 원래 오직 신의 소유였다는 것을 우리는 배운다. 기록된바, "그가(예수님이) 그의 때에(천년시대) 복되시고 홀로 능하시며 왕 중의 왕이시며 주중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자라는 것을 보이실 것이다?

      모든 다른 존재들, 천사, 인간, 짐승, , 물고기, 등은 각각의 생명의 한계를 담고있는 그릇에 지나지 않으며, 특성, 용량과 질에 있어서 창조자께서 기뻐하신 대로 각각에게 주신 유기체에 따라서 모두가 다르다.

     그 위에, 우리는 다음을 배운다: 원래, 다만 홀로 불멸을 소유하신 여호와께서 그의 아들 우리의 주님을 같은 신의 본성인 불멸의 본성으로, 지극히 높이셨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는 지금 아버지의 존재 자체의 정확한 표상이라는 것이다. (1:3) 


 

 

 

 

불멸을 받기 위한 기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지금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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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기록되기를, "아버지께서 그 자신 안에 내재하는 생명을 가지신 것처럼 그렇게 그는 아들에게도 그 자신 안에 내재하는 생명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5:26) 그 자신 안에 내재하는 생명, 곧 다른 원천에서 끌어당기거나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내존 하는 생명은 "불멸"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이다

     그래서 주 예수님의 부활 이래로 두 존재가 불멸의 존재이다. 더구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여! 똑같은 제공을 복음시대에 선택하고 있는 어린양신부에게 주신다. 그럼에도 이름뿐인 교인인 큰 무리의 모두가 이 위대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적은 무리"의 이기는 자들만이 받을 것이다

     이 적은 무리는 불멸을 얻도록 달음질치는(고전 9:24) 자들이고, 주님의 발자취를 친밀히 따르는 자들이며, 주님처럼 죽기까지라도 희생의 좁은 길을 걷는 자들이다. 이들은 부활 때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날 때, 신의 본성과 신의 형상을 가질 것이다. 이 불멸, 독립, 자존, 신의 본성은 좁은 길이 받도록 인도해주는 바로 그 생명이다.

교회 계급은 영적인 몸으로 일으킴을 받게 된다.

     이 계급은 무덤에서 인간의 존재로 일어나게 되어있지 않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육적인 몸을 무덤 속에 뿌렸을지라도, 영적인 몸으로 일으킴을 받는다는 것과 (고전 15:44) 이 모두가 "변화" 될 것이라는 것과(고전 15:52) 그들이 한 때 인간 본성인 땅에 속한 사람의 형상을 지녀온 것 같이, 하늘에 속한 그의 형상을 지닐 것이라는 것(고전 15:49)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적 몸이 무엇인지, 그러나 "언제든지 그가 나타나실 때에는,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요일 3:2) 그리고 "드러날 영광"에 함께 참여할 것이다. (1:27, 고후 4:17, 17:22, 벧전 5:10, 살후 2:14)

복음시대는 이 부르심을 위해서 유일하게 지정되었다.

위로 부르심은 복음시대에 
한정됐음

     본성의 변화를 받게 하기 위한 위로 부르심은 유일하게 복음시대에만 제한되어 있을 뿐이 아니라, 이 시대의 유일한 제공이다. 그러므로 이 장의 초두에서 인용한 우리 주님의 말씀(7:13,14)은 지금 제공된 유일한 상으로 인도하는 길에 있지 않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다

     좁은 길에 있지 않은 모든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넓은 길에 있다. 오직 좁은 길을 걷는 이들만이 세상에 내린 정죄를 아직까지 면했다. 지금 열려있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이 유일한 길은 그 노정의 어려움 때문에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이 극히 소수이다. 나약해진 인류의 대부분은 자기욕구충족의 넓고 쉬운 길을 더 좋아한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현재 좁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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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길은 생명, 불멸로 끝나지만, 그 길을 택함으로 받는 상이 죽기까지 인간 본성의 희생을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에 죽음의 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죽음과 같은 좁은 길이다. 아담의 죄와 죽음의 처벌에서 해방된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헌신한 사람들은 기약이 이르면 그들이 일반적으로 세상과 함께 실제로 았을 그들의 간주된 인간 권리들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거나 희생한다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위해서 그의 목숨을 버리시고 희생하신 것처럼 이들도 그와 함께 공동 희생자들이 된다. 그의 희생이 불충분하여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의 희생이 아주 충분하지만 이들은 그의 신부 겸,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 그와 더불어 봉사하고 희생하게 허락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죽음의 정죄 아래 있고 아담과 함께 죽어가고 있지만, "적은 무리"는 이미 설명한 믿음의 보답과 희생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와 함께 신의 본성과 영광의 참여자가 되기 위하여 인간의 존재로서 그와 함께 희생하고 죽는다

     만일 우리가 주와 함께 죽는다면 우리도 역시 확실히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당하면 우리도 역시 함께 하늘의 영광을 받을 것이다란 말씀을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딛후 2:11,12 그리고 롬 8:17)

복음시대의 끝맺음과 동시에 좁은 길은 끝날 것이다.

     천년시대 시초에, 지금 좁은 길에서 걷는 사람들은 그들이 받기 위해서 달린 그 위대한 상인 불멸함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신의 본성과 권세를 부여받았으므로, 그들은 그 시대에 세상을 회복하고 축복하는 위대한 일을 위해서 대비될 것이다. 복음시대의 끝맺음과 동시에 불멸로 인도하는 좁은 길은 끝날 것이다.

      왜냐하면 좁은 길은 "적은 무리"를 시험하고 증명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인데"적은 무리"의 선택이 완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받아들일 만한 "(그리스어, dekos -고후 6:2) 즉 그 동안에 예수님의 공로 안에 들어오고, 그와 함께 죽게 되는(딛후 2:11) 희생자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때이다

     아담의 처벌에서 온 죽음은 영구히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 죽음은 천년시대에 전폐될 것이다. 희생물로 죽는 죽음은 오직 복음시대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보답될 것이다.


 

 

 

 

육체를 따라 산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육체의 행위를 죽이면 여러분은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 8:13,14)

     이 시대의 성도들이 생명을 얻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은 오직 "새로운 피조물"로서만 이다. 그리고 오직 인간 존재로서만 우리는 희생물로서 죽기까지 헌신한다. 만일 인간 피조물들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면, 새로운 존재인 영적 존재들로서 우리는 그와 함께 살 것이다.(6:8)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 곧 변화된 마음은 그 새 본성의 싹틈이다.

좁은 길의 어려움과 위험들

     새로운 생명은 쉽게 질식될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이 우리에게 확신하기를, 진리를 통해서 성령으로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가 육체를 따라 산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우리의 생명을 잃음) 그러나 영으로 육체의 행위 (인간 본성의 성벽)를 죽이면 우리는(새로운 피조물로서)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8:13,14)고 했다

     이것이 모든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최고로 중요한 생각이다. 만일 우리가 인간 본성을 희생하기로 하나님과 서약하고, 만일 그 희생을 그가 받으셨다면, 그것을 취소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익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지금 죽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결코 되살아나지 않게 실제로 죽어야한다. 그러면 육체를 따라 살도록 되돌아감으로서 얻을 수 있는 전부는 그 새 영적 본성을 희생하여 얻어지는 약간의 육신의 만족이다.

또 하나의 계급이 있다: 이 계급은 세상이나 육체나 마귀 때문에 부분적으로 압도 되어있다.

     그러나 상을 열망하고, 성령으로 태어난, 헌신한 사람들이 많이 세상의 유혹들, 육신의 욕망들이나 마귀의 술책 때문에 부분적으로 압도되어 있다. 그들은 우리 앞에 놓인 상을 부분적으로 잊고, 하나님의 총애와 세상의 총애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운데 길을 걸으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세상과 벗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적이 되는 것임"(4:4)과 상을 위해서 경주를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것과 서로 영광을 받아드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오는 영광만을 구하라(요일 2:15, 5:44)는 권고를 그들이 잊고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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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으로 정결케 되었다.

     현재세상을 사랑하지만, 주님을 전적으로 떠나지 않고 서약을 경히 여기는 이들은 채찍질과 연단으로 깨끗함을 받는다. 그 사도가 그것을 표현하듯이 그런 사람을 육체의 멸망을 위하여 사탄에게 넘겨주어, (새로 성령으로 태어난 본성)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다. (고전 5:5) 그리고 만일 징계로 올바른 훈련을 받으면, 그 사람들은 마침내 영적 상태로 받아질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험악하고 험준한 좁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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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좁은 길의 어려움은 하나의 분리하는 원칙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순화하는 것이다.

     그들은 천사들이 가진 것 같이, 영구한 영적 생존을 가질 것이나, 불멸의 상을 잃을 것이다. 그들은 그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며, 그들의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될 것이다.(7:9-17) 그러나 그것이 영광스러울 것일지라도 이기는 자의 "적은 무리"의 위치만큼 영광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 이기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 겸 제사장이 될 것이며, 그의 신부로서 그와 함께 상속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게될 것이며, 그와 함께 불멸의 왕관을 쓰게될 것이다.

     우리의 것은 험악하고 험준한 좁은 길이며, 여행의 각기 잇따른 걸음을 위해서 힘이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의 말씀으로 격려된다. 용기를 내십시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나의 권능은 약한 가운데서 완전해 지기 때문이다. (16:33, 고후 12:9) 

     이 길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상속자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가 되기 위하여 "특별한 소유가 된 백성"을 신성하게 하고 순화하기 위해 하나의 분리하는 원칙으로서 역할 하게 된다. (8:17, 벧전 2:9) 

     이 일들을 생각하여, 우리가 믿음의 훌륭한 싸움을 싸우며, "영광의 면류관"(불멸, 신의 본성)을 굳건히 잡으면서, 적절한 때에 도움을 받기 위하여 자비를 얻고, 하나님의 은총을 얻도록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가까이 가도록 합시다. (딛전 6:12, 딛후 4:8, 벧전 5:4, 4:16)

세상의 회복으로 인도하는 길은 희생이 아니라 인간권리의 지당한 즐거움일 것이다.

거룩한 대로

     복음시대의 특별한 희망은 매우 뛰어나게 영광스러우면서도 그 희망으로 인도하는 길이 대응하게 어렵기 때문에 좁고, 한 걸음마다 고난과 위험에 에워싸여 있어서 소수만이 그것을 발견하고, 그 길의 여정 끝에 위대한 상을 받을 수 있지만, 다가오는 시대에 있는 일들의 새 질서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희망이 약속되어있기 때문에 그 희망으로 인도하는 길이 다르다. 불멸로 인도하는 길은 여느 때 같으면 합법적이고 타당한 희망, 야망과 욕구의 희생 (인간 본성의 영원한 희생)을 요구한 길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희망인 인간의 완벽과 회복으로 인도하는 길은 오직 죄를 버리는 것만을 요구하며, 인간의 권리와 특권의 희생을 요구하기보다는 그들의 적당한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그것은 개인의 청결과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 아담이 누리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쉬운 여행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된 대로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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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정원

좁은 길은 희생하는 길이며 겟세마네의 쓰라린 경험들이다.

     실제로 인간의 완벽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우 분명하고 쉽다.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길을 잘못 알 수 없다.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그 길로 걷는 사람과 그 길에 생소한 그들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35:8 - Leeser)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이웃사람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알아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31:34) 소수의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좁을 길인 대신에, 그 길을 공공의 도로, "대로"라고 부른다. 좁고, 가파르고, 험하고, 어렵고, 에워싸인 샛길이 아니라, 쉬운 여행을 위해서 특별히 대비된 길이다. 여행자들의 편리와 편함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되었다

     이사야 35 장의 8 절과 9절은 그것이 공공의 길이며 구속함을 입은 자들 모두에게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으니, 그 귀중한 피로 사신 기회와 축복들을 인정하고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거룩함의 대로에서 인간의 완벽과 영생과 완전 회복의 웅대한 목표에 이르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들은 의롭다고 인정된 것으로 간주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신성하고 완벽하다고 간주된 신분으로 인정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거룩함의 대로에서 시작하였으면, 그들은 그 후 즉시 노력과 복종의 결과로 실제의 완벽을 향하여 올라갈 수 있고, 그 때에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는 구세주가 모든 것을 노력하고 복종하기에 유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새 왕국의 지혜롭고 완전한 행정이 각 개인을 그의 필요에 따라서 조력해 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각이 나겠지만, 이것은 속죄물의 정당한 결과이다. 우리의 주님이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죄물로 주시고, 모두가 진리를 알게되고, 진리로 실제의 완벽에 달하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왜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훌륭하고 넓은 대로를 즉시 만들어 주시지 않는가? 왜 그가 그 걸림돌, 함정, 유혹을 제거하시지 않는가? 왜 그 길을 찾기 어렵게 좁고, 험하고, 고통스러우며, 그 길을 따라 걸어가기에 더 한층 어려운 길을 만드시는 대신에, 그가 죄인을 하나님과 완전한 조화로 돌아가게 돕지 아니하시는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함과 현재의 좁은 길은 특별한 상으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 상속자의 적은 무리의 시험과 선택을 위한 것이라는 것과 몸은 선택되어 그들의 머리와 함께 극히 높여질 때 모든 민족을 축복할 것임을 깨닫지 못함이 그 주제가 어떤 사람들을 매우 혼동된 관념으로 이끌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거룩함의 대로(생명으로 인도하는 쉬운 길)를 지금 시대에 그러한 길은 존재도하지 않은 때 전도하려고 하며, 그들은 사실들과 성서를 그들의 틀린 논리와 맞게 하려고 문제를 혼동하고 타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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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이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를 입히지도 파괴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 11:9)

무지함과 미신은 과거의 것이 될 것이다.

의로운 자는 최종적으로 당연한 보답을 받을 것이다.

     곧 열리게될 대로에서는 오직 죄 있는 것들만 금지될 것이다. 그런데 좁은 길을 통과하는 그들은 그 자신들을 부인하고, 얽매는 죄들에 대비하여 계속 싸울 뿐이 아니라, 죄가 아닌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한다. 이것이 희생의 통로다. 이에 비해, 오는 시대의 통로는 의의 대로이다

     그 대로에 대해서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포식하는 들짐승도 그리로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그런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상징적인 언어로 의미 있게 진술 되어있다.(35:9) 죄 많은 길들을 기꺼이 버리고 의를 추구하려고 하는 그들의 길에 지금 얼마나 많은 무서운 사자들이 있는가

     타락된 여론의 사자가 있다. 이는 의복, 가정과 사업제도, 등 일상생활 관계의 일에 양심의 명령을 과감히 순종해 보려는 것에서 많은 사람을 단념하게 한다. 폭음으로 유혹하는 사자도 있다. 이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폭음이 제거되기를 기꺼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금주가들과 절제 노력가들은 오직 다음 시대의 권능과 권세로서만이 제거할 수 있는 그들의 손에 있는 엄청나게 큰 임무를 지금 발견한다. 그리고 도덕상의 개혁을 하려고 하는 다른 훌륭한 노력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포식하는 들짐승도 그리로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은 일반의 이익의 비용으로 이기적인 개인의 이익을 진척하기 위하여 조직된 거대한 주식회사들이 관용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나의 거룩한 산(오는 왕국) 모든 곳에서 해를 입히지도 파괴하지도 않을 것이다."(11:9) 사악, 등의 성벽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지금 이 시대의 좁은 길과 비교하면 그것은 아직도 쉬운 길일 것이다. 돌들(걸림돌)이 모두 치워질 것이며, 진리의 기준이 사람들을 위하여 높여질 것이다. (62:10) 

     무지함과 미신은 지나간 일이 될 것이다. 의로운 자는 당연한 보답을 받는가 하면, 악한 자는 당연한 응분의 벌을 받을 것이다.(3:15,18) 돌아온 방탕아처럼 인류는 건전한 징계와 알맞은 격려와 분명한 교훈으로 조상 아담이 타락한데서 장려한 완벽에 이르기까지 훈련과 단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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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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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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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의 험악하고 험준한 좁은 길

     이렇게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며 (멸망에서 거룩함의 장려한 대로로) .....노래와 영구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환희와 기쁨을 얻을 것이며 비탄과 한숨은 달아나게 된다."(35:10) 우리 주님은 이 길들 중에 오직 두 길에 대해서만 언급하셨다

     왜냐하면 셋 째 길은 아직 열리기에 적합한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기쁜 소식을 알리실 때, "여러분이 방금 들은 이 성구가 오늘 성취되었다."라고(4:21) 그가 말씀하셨으나, 그 당시 적합한 때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복수의 날"을 생략하여 언급하심과 같다. (4:19과 사 61:2를 비교할 것) 그러나 지금 좁은 길이 종결에 가까이 이르고 있을 때, 장려한 의의 대로가 여명기의 빛 가운데 더욱 더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우리가 발견한 것은 "넓은 길"이다. 즉 현재에 인류의 대부분이 "이 세상의 통치자" 때문에 미혹되고, 악용된 취미로 인도되어 그 길을 걷고 있다. 넓은 길이 열렸으며, 우리 인류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넓은 길에서 그 길의 무모한 진로를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대응하는 속죄물로 주시고, "넓은 길"이 인도하는 멸망에서 모두를 구원하시는 우리 주님이 "거룩함의 대로"를 열게 되어있다. 거룩함의 대로는 그의 귀중한 피로 사신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 모두가 특정한 때에 이용할 수 있으며, 걷기 쉬울 것이다

     그 위에, 같은 귀중한 피의 공로로 열린 현재의 "좁은 길"은 특별한 상으로 인도하는 특별한 길이며, 이 좁은 길은 신의 본성의 참여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축복을 위해서 곧 드러날 영광의 왕국에서 주 예수님과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지금 선택하고 있는 그들을 위한 시험과 단련으로서 특별히 좁고 어려운 길로 만들어있다. 이 희망을 가진(이 상을 보는) 사람들은 모든 다른 희망을 비교적으로 손실과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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