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개의 본성들

연구 10

영적 본성과 인간의 본성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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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오해

––땅의 본성(인간의 본성)과 하늘의 본성(영적 본성)

––땅의 영광과 하늘의 영광

––영적 존재에 관한 성서의 증언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성질과 불멸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가
 영생을 가질 수 있을까
?

––총애를 부여하시는데 있어서의 공정

––상상된 원칙이 검토되었음

––완전한 상태에 다양성

––하나님의 주권

––인간에게 만족한 분배를
 위한 하나님의 예비

––그리스도의 몸을 택하심

––어떻게 그들의 본성의 변화가 완수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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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오해

     인류 대부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의 이전 상태인 에덴에서 잃은 인간의 완벽으로 회복하게 되어있다는 것과(16:55) 이 일반적인 계획의 예외로서 기독교의 교회는 인간의 본성에서 영적 본성으로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 본성에 이르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성서는 땅의 모든 가족에게 생명, 축복, 회복의 약속을 약속하면서, 다만 복음시대에 선택된 교회에게 영적 본성으로 변화를 제공하고, 약속한다. 어느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희망을 확증하는 구절은 단 하나도 성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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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인류 대부분이 모든 타락, 약점, 고통, 불행, 죄에서 유래된 죽음에서 구원되고, 타락하기 전에 맛보던 인간 완벽의 상태로 회복된다면, 그 사람들은 복음시대에 부여되는 특별한 "위로 부르심"을 받고, "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 (3:14, 벧후 1:4)가 되는 자들과 같은 정도로 실제로 완전히 그 타락에서 구원된다.

완벽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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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완벽한 인간을 성립하는가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함과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성질""불멸" 이란 용어들의 오해와 공정의 그릇된 관념이 합해서 이 오해에 도달하고, 그렇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성서들을 불가사의하게 했다

     성서의 단 한 구절로도 증명되어있지 않지만, 공통한 견해는 완벽한 인간은 지상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과 지상 사람에게 보이는 모두는 오직 부분적으로 진화된 인간이라는 것과 완벽에 달하기 위해서는 그가 영적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다루는"(딛후 2:15)데서 유래되는 그 조화와 미를 구성하는 대신에 성서의 혼동을 유발한다.

단지 두 완벽한 인간이 있었다. - 아담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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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본성 (인간의 본성) 과 하늘의 본성(영적 본성)

     성서는 두 사람, 단지 두 완벽한 사람(아담과 예수)이 있었다고 가르친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1:26) 즉 이성, 기억력, 판단, 의지력, 등의 유사한 정신력과 공정, 자비심, 사랑, 등의 도덕상의 본질로 창조되었다

     "땅에서 났으며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은 (고전 15:47) 정도와 한계와 범위에 있어서 널리 다르지만, 같은 종류의 본질을 갖춘 영적인 존재의 땅에 속한 형상이었다. 하나님께서 타락된 인간에게까지 이제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1:18)


아담은 땅의 모든 것의 주권자로 창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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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보다 조금 낮은...

     여호와께서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신 것과 같이, 인간은 땅의 모든 것의 주권자로 창조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로 가축과 물고기와 새, 등 모든 것을 복종시키게 하자 하셨다. (1:26) 

     모세는 우리에게 이야기(1:31) 하기를, 하나님께서 그가 만드신- 만드시기를 오직 시작한 것이 아니라, 완성한- 인간을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을 "아주 좋다" " 즉 완벽하다고 생각하셨다." 그의 지적인 피조물에 있어서 완벽에 못 미치는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좋은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조된 대로, 인간의 완벽은 시편 8:5-8에 표현되어있다.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만드시고 그에게 영광과 영화로 면류관을 씌우셨으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들을 지배하게 하시어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작은 가축과 소, 그 모두, 벌판의 짐승들,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

모든 육체가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가 있고, 또 가축의 육체가 있으며, 새의 육체가 있고, 물고기의 육체가 있습니다.” (고전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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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진화론에 순응케 하려는 어떤 사람이 제안하기를, 히브리서 2:7에 있는 "조금"이라는 말은 인간을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라고 이해할 수 있다며, 천사보다 정도가 낮게 라는 뜻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을 위한 권위도 없고, 판단력도 없다. 이것은 시편 8:5에서 인용된 것인데 헤브라이어와 그리스어 원본과의 정밀한 비교는 그 중요성에 관해서 의심할 수가 없다. 분명히 표현된 그 관념은 천사보다 정도에 있어서 낮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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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편에서 다윗은 본래 상태에 있어서 사람(아담)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른 사람과 땅의 왕을 두시려는 그의 최초의 계획을 단념하지 않으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시고 구원하시며, 다시 같은 본래 상태로 회복하실 것이라는 것을 예언적으로 암시한다

     사도 바울은(2:6) 같은 사실 곧 하나님의 최초의 목적을 단념하시지 않았다는 것과 원래 당당하고 완벽하며, 땅의 왕인 인간을 염두에 두시고, 돌보시고, 회복하시게 되어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끈다. 그 다음에 그는 부언하기를, (2:8,9) 우리는 이 약속하신 회복을 아직 보지 못하나, 하나님께서 그것의 성취를 위하여 취하시고 있는 첫 단계를 본다고 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완벽한 성년의 영광과 영예로 면류관을 쓰신 것을 본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적합한 속죄물이나 대리로서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고, 타락된 모두에게 인간의 회복을 위한 길을 이렇게 준비하실 수 있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가장 면밀한 번역자들 중의 하나인 롸더햄(Rotherham)은 이 절(2:6,7)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이 그를 염두에 두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십니까?

     당신은 그를 천사보다 조금 낮추셨으며

     영광과 영예로 그에게 면류관을 씌워

     당신의 손으로 이루신 것을 다스리도록 임명하셨습니다."

조금 낮다는 조금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땅의 영광과 하늘의 영광

     정도에 있어서 조금 낮다 함이 조금 덜 완전함을 의미한다고 추단해서도 안 된다. 한 피조물이 완전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완전한 피조물보다 낮은 단계의 존재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한 마리의 완전한 말은 한 완벽한 인간보다 낮을 것이다.

     생명이 있건 없건 여러 가지 본성들이 있다.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의 도표를 준비한다:

 

하늘/ 영적
존재의 등급

/ 동물의
존재의 등급

식물계의
등급

광물계의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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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
-------
천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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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짐승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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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관목

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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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본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본성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완전한 상태에 다양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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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본성에는 별개의 차이들이 있다.

     기재된 각 광물들이 순수할 수 있지만, 그러나 금이 최고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만일 각 서열의 식물들이 완전하게 된다해도, 그것들은 본성과 등급에 있어서 여전히 다를 것이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만일 각 종들이 완전하게 된다해도 다양성이 여전히 있을 것이다. 본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본성을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낱말 본성은 때때로 적응하는 의미에서 사용된다. 예를 들면, 개가 사나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말이 온순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본성이 나쁘다라고 말 할 때와 같다. 그러나 그 낱말을 그렇게 사용할 때, 그것은 단지 다른 것과 비교하여 기술되고 있는 하나의 성벽을 의미하며, 엄밀히 말하자면 본성에 관련이 없다.

     영적 존재의 등급도 역시 완전해도 본질이나 종류에 있어서 서로 보다 높고 낮은 관련이 있다. 신의 본성은 모든 영적 본성 중에서 가장 높고 우수하다. 신이 천사의 본성보다 우수하듯이, 그리스도는 부활 때 완전한 천사들 보다 "그만큼 뛰어나게" 되었다. (1:3-5)

광물계의 가장 높은 등급은 식물계의 가장 낮은 등급보다 열등하거나 정도가 낮다.

왜냐하면 식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도표에 지정된 계급들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이지만, 아직도 그것들 사이의 비교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면밀히 주의 해 봅시다. 광물계의 가장 높은 등급은 식물계의 가장 낮은 등급보다 열등하거나 정도가 낮다. 왜냐하면 식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계의 최고의 등급은 동물계 중에서 최하의 등급보다 정도가 낮다. 왜냐하면 생명 있는 동물은 동물의 가장 최하의 형태에서까지도 생존을 의식할 만큼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동물계나 땅의  존재들 중에서 최고이지만 "천사보다 정도가 낮다". 왜냐하면 천사는 영적 또는 하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죄 있는 인간과 회복된 인간 사이에 거대한 대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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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죄로 타락된 지금 보고 있는 인간과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대로 만드신 완벽한 인간사이 에는 놀라운 대조가 있다. 죄가 그의 성질뿐이 아니라, 용모도 점차 변화시켰다. 번식된 세대들은 무지, 방탕, 일반적 악행으로 인류를 더럽히고 망쳐 놓았기 때문에 인류 대부분 속의 하나님의 형상이 거의 지워졌다. 도덕적, 지적인 질이 작아졌다. 그리고 과도하게 발전된 동물적인 본능은 더 높은 본능 (도덕적, 지적 자질) 과 이젠 균형이 맞추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그만한 의학의 조력이 있는데도, 그의 평균수명이 지금은 약 30 년일 정도로 체력을 잃었다. 이에 반하여, 최초에 인간은 같은 처벌 아래 930 년을 생존하였다. 그러나 죄와 죄의 처벌 때문에 이렇게 모독되고 타락되었으며, 죽음이 그의 안에 작용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로 그 기간에 인간은 마음과 신체를 그의 최초의 완벽과 영광, 영예와 주권으로 회복하게 되어있다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고 그를 통해서, 회복되는 것들은 아담의 범죄를 통해서 잃은 것들이다.(5:18,19) 인간은 하늘의 낙원이 아니라, 지상의 낙원을 잃었다. 죽음의 처벌아래 그는 영적 생존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잃었다. 그리고 "잃은 것을 찾고 구원하려고 왔다"라고 선언하신 그의 구세주가 희생을 치르고 잃은 모든 것을 획득하셨다. (19:10)

완벽한 인간은 영적 존재가 아니다.

영적 존재에 관한 성서의 증언 

     위에 더하여 완벽한 인간은 영적 존재가 아니라는 증명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우리주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영광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 영적 형상, 영적 존재- 으로 있었다고 우리에게 알린다. 그러나 인류를 위하여 속죄물이 되기 위하여 그가 죽음으로서 죄인의 대리인이 되게 된, 그 죄인과 같은 본성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의 본성이 변화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 주님은 그 자신의 단계 보다 한 단계 낮은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않고, 두 단계를 내려와서 인간의 본성을 취했다고 했다.- 그가 사람이 되었다. 그는 "육체가 되었다." (2:16, 2:7,8,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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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다음의 세 가지를 가르친다는 것을 유의하기 바란다

(1) 천사의 본성은 영적 존재의 유일한 계급이 아니라는 것뿐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사람이 되시기 전의 그의 본성보다 낮다

(2) 그가 사람이 되시기 전의 우리 주님의 위치는 지금만큼 높지 않으셨다

     이것은 자진해서 인간의 속죄물이 되는 그의 순종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탁월한 위치로 높이셨음"이기 때문이다. (2:8,9) 그는 지금 영적 존재 중에서 최고 계급의 본성을 소유한다. 곧 신의(여호와의) 본성의 참여자이시다. (벧후 1:4)

     그러나 신과 천사와 인간의 본성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이라는 증명을 우리는 이렇게 발견 할 뿐이 아니라, 완벽한 사람이 된다고 해서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천사의 본성이 완전하다고 해서 천사가 신이나 여호와와 동등함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않고 다른 본성 곧 인간의 본성을, 그러나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완벽치 않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완벽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간 같은 타락되고 거의 죽은 존재가 아니라, 그는 완벽의 활기로 가득 찬 한 사람이 되었다.

완벽한 사람이신 예수님은 완전한 율법을 지키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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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완벽한 인간만이 완벽한 사람을 위하여 대응한 대가를 줄 수 있었다.

     되풀이해서,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한 완벽한 사람의 능력의 완전한 표준인 완전한 법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완벽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완벽한 사람인 아담이 상실한 생명을 위해서 속죄물(대응한 대가 - 딛전 2:6)로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있게 되었으므로, 죽은 사람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있게 되었습니다." (고전 15:21)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가 정죄아래 있었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희생 제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과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였을 것이다. 한 완벽한 사람이 시험을 받고, 실패하고, 그래서 정죄되었다. 그래서 한 완벽한 사람만이 구세주로서 대응한 대가를 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공명정대하게 그 질문을 또 다른 형식으로 우리 앞에 당면하고 있다. 즉 성서가 그렇게 나타내듯이, 만일 육체로 계신 예수님이 한 완벽한 사람이었으면, 한 완벽한 사람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보다 정도가 낮은 한 인간인 육체의 존재라는 것을 그것이 증명하지 않는가? 논리적인 결론은 틀림이 없다. 이 위에 시편의 작자의 영감을 받은 말씀(8:5-8)과 히브리서 2:7-9에 그것에 대해 바울의 참고가 있다.

 예수님은 두 본성의 결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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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두 번 본성의 변화를 체험하셨다.

     예수님은 인간과 영적인 두 본성의 결합도 아니었다. 두 본성의 융합은 이도 저도 아니지만 신의 제도에 불쾌한 결함이 있는 잡종을 낳는다. 예수님이 육체로 계셨을 때에 그는 한 완벽한 인간 존재였다. 그 이전에는 한 완전한 영적 존재였다

     그리고 그가 부활한 이래로는 그는 가장 높은 신의 계급의 한 완전한 영적 존재이다. 예수님은 신의 본성 상속의 보증을 30 살에 침례(3:16,17) 안에서 상징된 것 같이, 죽기까지의 헌신을 할 때까지 받지 않았다. 30살은 율법에 따라서 성년남자, 그러므로 한 성년으로서 스스로 헌신하기 옳은 때이다. 그가 신의 본성의 보증조차 받을 수 있기 전에, 인간의 본성을 죽기까지 헌신해야 했다

     우리 주님은 헌신을 실제로 실행하고, 죽기까지 인간의 본성을 실제로 희생하실 때까지, 신의 본성의 완전한 참여자가 되지 않았다. 한 성년이 된 후,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신의 본성으로 높이셨다.(2:8,9) 만일 이 성서가 진실이라면 인간의 본성이 실제로 희생될 때까지 곧 죽을 때까지 그는 신의 본성으로 높여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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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한이 차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셨으니, 그는 여자에게서 나게 되었으며 율법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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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우리는 그 분의 영광, 곧 아버지의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에게 속한 그러한 여광을 보았다.) 그 분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셨다.” ( 1:14)

 

 

 

예수님은 아담이 잃은 것에 대등한 값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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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대제사장, 곧 충성스럽고, 악의가 없고, 더럽혀지지 않고, 죄인들과 구별되고, 하늘들 보다 더 높게 되신 분은 우리에게 적합하였습니다.” ( 7:26)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깨닫는다. 곧 예수님 안에는 본성의 혼합이 없었지만, 그는 두 번 본성의 변화를 체험했다. 첫째, 영적 본성에서 인간의 본성으로, 그 다음에 인간의 본성에서 영적 본성의 제일 높은 질서로, 즉 신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각 경우에 있어서 다른 본성을 취하기 위하여 한 본성을 포기해야 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될 때까지, 세상 앞에 흠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 완벽한 인간성의 이 당당한 예에서 우리는 우리 인류가 아담 안에서 타락되기 전의 완벽과 회복하게 되는 완벽을 본다. 사람의 속죄물이 되는데 있어서 우리 주 예수는 사람이 잃은 것을 위해 동등한 것을 주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의 믿음과 필요조건에 순종을 통하여 영적 본성이 아니라, "잃었든" 완벽한 인간의 본성을 다시 받을 수 있다.

      완벽한 인간존재의 완전한 기능과 능력은 언제까지나 발휘될 수 있고, 또 새롭고 다채로운 흥미의 대상들에 발휘될 수 있으며, 지식과 기술은 굉장히 증대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이나 능력의 그러한 증대는 본성의 변화를 초래하거나 본성을 보다 더 완벽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완벽한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발전하는 것 뿐일 것이다

     지식과 기술의 증대는 의심할 바 없이 언제까지나 인간의 축복된 특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람일 것이며, 오직 이미 소유한 인간 본성의 능력을 더 충분하게 이용하는 것을 배우는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광범한 한계를 넘어서는 그는 바랄 수 없으며, 그의 욕구가 그의 능력의 범위에 제한되었으므로 그가 진보하기를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한 사람으로서 인류의 대부분이 회복될 그 완벽한 인간의 본성의 한 예증이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부활하신 이래로 그는 극복하는 교회가 부활 때 그와 같이 함께 할 영광스러운 신의 본성의 예증이다.

하늘의 몸들이 있으며 땅의 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몸들의 영광이 다르고, 땅의 몸들의 영광이 다릅니다.” (고전 15:40)

 

     이 현재시대가 본성의 변화를 제안 받은 이 계급의 발전에 주로 바쳐있고, 사도들의 서한이 이 "적은 무리"의 교훈에 바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 선택된 일단의 완성으로 끝난다고 추리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반대극단으로 가서, 이 계급의 사람들 "적은 무리"에게 제안된 신의 본성과 영적 몸 (고전 15:44)을 받게 된다는 특별한 약속이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모든 인류에게 제안된 다른 귀중한 약속들 위에 "귀중하고도 매우 웅대한 약속들"을 이들에게 준 것이다. (벧후 1:4)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면 성서는 "적은 무리"속에 신의 본성의 완벽과 회복된 세상 사람들 속에 인간의 본성의 완벽은 두 분리된 것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관찰해야 한다.

영적 존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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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존재가 무엇인가? 무슨 능력을 그들은 소유하고 있는가? 무슨 율법으로 그들은 지배되는가? 하는 것을 지금 좀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신화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주제에 많은 미신이 우세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관념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보다 높은 영적 존재의 성질을 깨달을 수 없음을 암시 하지만(고전 2:14) 마치 신화나 미신적이라는 어느 관념을 경계하려는 것처럼 그는 명백히 진술하기를, 육적인 (인간의) 몸뿐이 아니라, 영적 몸도 있고, 땅의 몸뿐이 아니라, 하늘의 몸도 있으며, 하늘의 몸의 영광뿐이 아니라, 땅의 몸의 영광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본바와 같이, (인간)의 영광을 아담의 죄 때문에 잃긴 했으나, 주 예수님과 그의 신부(그리스도, 머리와 몸)가 천년통치 기간에 인류를 위해 회복하게 되어있다. 하늘의 몸의 영광은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성령으로 믿음의 눈에 드러난 정도 외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영광들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이다. (고전 15:38-49) 

     우리는 육적인 흙의, 땅의 몸이 무엇인가를 어느 정도까지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육적인 몸의 완전함의 영광은 대강만을 추단 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지금 그런 것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과 피와 뼈이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3:6)

 

     그리고 두 별개의 종류의 몸들이 있기 때문에 영적 몸이 무엇이든, 그것이 살과 피와 뼈로 구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천상의, 하늘의, 영적 몸일 것이다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니"). 그러나 영적 몸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우리가 그와 같이 될 것이다" (3:6, 요일 3:2) 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제외하고는 영적 존재이건 인간의 존재이건, 어떤 존재가 한 본성에서 다른 본성으로 변화된 적이 있다는 기록이 우리에게는 없다. 이것은 예외적인 목적을 위한 예외적인 경우였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을 때,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이 영구히 천사인 채로 있을 것을 의도 하셨다. 사람도 그렇다

     각기 그 자신의 단계에서 완전하다. 적어도 성서는 아무 다른 목적에 대한 암시를 주지 않고 있다. 무생물 창조에 만족한, 거의 끊임없는 다양성이 있는 것같이, 생명 있는 지적인 창조에도 완벽에 있어서 같은 다양성이 가능하다. 완전한 상태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영광스럽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듯이, 하늘(천상)의 몸들의 영광은 한 가지 종류의 영광이고, ()의 몸들의 영광은 또 다른 종류이며, 다른 영광이다. (고전 15:40)

 

 

 

영적 존재는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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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종복이 병거에 탄 천사들을 보았다.

     부활 후에 우리 주님과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에 관해 기록된 사실들을 조사함으로서, 이렇게 영적인 것을 영적인 말과 결합시키면서(고전 2:13) 영적 존재들에 관해서 우리는 얼마간의 일반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천사들은 나타날 수 있으며,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들은 모두 공적 봉사를 위한 영들로서, "구원을 상속받을 자들을 섬기도록 보냄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까."(34:7, 1:14) 

     그들이 눈에 보이게 섬겼는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게 섬겼는가? 의심할 바 없이 후자이다. "앗스르 (Assyrians) 의 한 군대가 엘리사를 에워쌌다. 그의 종복이 두려워했는데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젊은 종복의 눈을 열어 주시므로, 그가 보니, 산간 지방에 불말(불같이)과 불 병거들이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또 한편, 발람에게는 천사가 보이지 않았는데, 나귀는 그의 눈이 열려 그를 보았다." (왕하 6:14-17, 22:21-27)

영적 존재는 인간의 형상으로 짐짓 가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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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났다.

 

영적 존재는 영광스럽고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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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수스의 사울

   왕이여, 한낮에 길에서 제가 보니 하늘에서 해보다 더 눈부신 빛이 제 주위를 그리고 저와 함께 가던 사람들의 주위를 비추었습니다. 우리가 모드 땅에 쓰러졌을 때에, 저는 히브리말로 저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찌르는 막대기를 계속 발길질하는 것은 너만 힘든 일이다.’ 하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 26: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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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로, 천사들은 인간의 몸으로 짐짓 가장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 주님과 두 천사들이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위하여 저녁을 준비하여, 그들은 저녁을 먹었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막 가려고 할 때까지 그들 중에 하나는 주님이시고, 다른 둘은 천사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 후, 그 두 천사들은 소돔 (Sodom)에 내려와 롯 (Lot)을 구하였다.(18:1,2) 한 천사가 기드온(Gideon)에게 한 인간으로 나타났으나, 그 후에야 천사 자신을 알게 했다. 한 천사가 삼손(Samson)의 부모에게 나타났는데 그들은 그가 제단의 화염가운데 하늘로 올라갈 때까지 사람으로 생각했다. (  6:11-22, 13:2-21)

     셋째로, 영적 존재는 그들의 정상의 상태에서는 영광스러우며, 종종 그들을 영광스럽고 광채 난다고 칭한다. 무덤의 문에서 돌을 굴려 낸 천사의 겉모양은 "번개 와 같았다." (28:2,3) 

     다니엘은 한 영적 몸의 섬광에 마주쳤는데, 그가 묘사하기를, 그의 눈은 타오르는 횃불 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고, 팔과 발은 빛난 구리와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 같았다고 했다. 그의 앞에 다니엘은 한 죽은 사람 같이 엎드러졌다.(10:6,10,15,17) 타서스(Tarsus)에 사는 사울도 대 낮에 햇빛 광채이상 빛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의 비슷한 섬광에 마주쳤다. 사울은 그의 시력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9:3,4)

     여기까지는 우리가 다음 사실을 발견했다: 영적 존재는 확실히 영광스럽다. 그러나 영적 존재들을 보도록 사람의 눈을 열어주거나, 그들이 인간으로 육체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 외에는,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우리가 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특별한 상술을 검토할 때 더한층 확증된다. 주님이 사울에게 홀로 보이고, 함께 가던 사람들은 음성의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9:7)

     다니엘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가 묘사하는 그 영광스러운 존재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큰 떨림이 자신들에게 내리자 달아나 숨어버렸다. 다시 이 영광스러운 존재가 선언하기를, "페르시아(Persia) 왕국 영역의 군왕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저항하였다." (10:13)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이 페르시아의 군왕이 이십일 일 동안 저항한 이 사람 앞에 죽은 사람 같이 엎드러졌는가? 어떻게 이럴까? 확실히 그는 군왕에게 영광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다. 그가 보이지 않게 그와 더불어 임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주님은 부활 후에 영적 존재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본 천사(영적 존재) 가운데에서 예증된 같은 능력을 역시 소유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 장에서 더 충분히 알게되는 바와 같이, 그러한 것이 실정이다.

영적 본성과 인간의 본성은 별개다.

     이렇게 성서는 영적 본성과 인간의 본성이 분리되고 별개의 것으로 본다는 것과 한 본성에서 다른 본성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증거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그와 반대로 성서는 오직 극소수만이 인간에서 그들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이미 높여지신 신의 본성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 훌륭하고 특별한 면모는 모든 것을 회복하는 위대한 미래의 일을 위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이들을 준비해주는 그 훌륭하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이다.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은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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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면할 수 없음 불멸

     인간 존재와 영적 존재, 그리고 땅에 속한 약속과 하늘에 속한 약속에 관한 성경말씀의 비교에서 우리가 배운 것과 엄밀히 조화되는 부제(죽음을 면할 수 없음과 불멸)의 참된 의미를 우리는 발견할 것이다

     이 부제 낱말들에 보통 매우 불확실한 의미를 주고 있으며, 그 의미들의 그릇된 관념은 일반적으로, 그리고 성서를 사용하는데 이 부제 낱말들에 관계되는 주제에 대하여 오류의 견해를 일으킨다.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이란 낱말은 죽는 경향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죽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죽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불멸"이란 낱말은 죽는 경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지 죽음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죽음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죽음을 면할 수 없음 일반의 틀린 관념은 죽음이 불가피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불멸의 의미의 일반적 관념은 거의 더 정확하다.

불멸은 죽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을 면할 수 없음과 불멸에 관해서 혼동이 있다.

     불멸은 멸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말들의 구성만으로도 그 말들의 참된 정의를 가리킨다. 아담이 범죄 전에 죽음을 면할 상태에 있었는지 불멸 상태에 있었는지를 정해 보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혼동 된 것은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이란이란 말의 그릇된 관념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론하기를, 불멸의 존재는 죽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일 아담이 불멸의 존재였다면  하나님께서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2:17)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논리적인 결론이다. 이와 반대로, 그들은 말하기를, 만일 그가 죽음을 면할 수 없 존재였다면, 아무리 해도 그가 죽음을 회피할 수 없었으므로,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이 어떻게 위협이나 처벌로 될 수 있을까" 하며 그들의 틀린 정의에 따라 말한다.

죽음을 면치 못할 생명은 외부의 요소로 유지된다.

 

     문제는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이란 말에 준 그릇된 의미 속에 있다는 것이 감지될 것이다. 정확한 정의를 적용하면 모두가 명백하다. 아담은 멸하게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즉 그는 죽음이 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가득 차고 완전한 한도로 생명을 가졌으나, 선천적인 생명을 가지지 않았다

     그의 생명은 금단의 열매를 제외하고는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로"유지된 생명이었다.(2:16) 그리고 그가 계속 창조자께 순종하며 그와 조화되어 있는 한, 그의 생명은 확보되었다. 생명을 지탱하는 요소들(나무 열매들)은 부인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인 것은 아담이 생명을 가졌고, 죽음을 완전히 피할 수 있었으나, 그는 아직도 죽음이 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없 존재였다는 것이다.

죽음을 면할 수 없 존재가 영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질문이 있게 되는데, 만일 아담이 죽음을 면할 수 없 존재로 시험에 있었다면 그는 불멸을 얻기 위해 시험에 있었는가? 일반적인 대답은 "" 일 것이다. 우리는 "아니요" 라고 대답한다. 그의 시험은 그가 이미 가지고 있는 생명과 축복가운데 존속하기에 합당한가 아닌가를 보기 위해서였다

      만일 아담이 복종하면 불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무데에도 약속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모든 추측을 방치하지 않을 수 없다. 순종하는 한, 그는 그 당시에 맛보던 축복의 영속됨이 약속되었고, 만일 불순종하면 모든 것의 손실(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위협 당했다.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이란 낮말의 의미의 그릇된 관념은 일반대중을 낱말의 죽지 않는 모든 존재는 불멸이다"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늘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 천사들, 그리고 모든 인류를 이 불멸계급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이다. 하늘의 천사뿐이 아니라, 타락에서 구원된 인류의 거대한 다수는 항상 죽음을 면할 수 없 존재일 것이다. 완벽과 행복의 상태에 있긴 하지만, 만일 죄를 범하면 일반대중은 항상 죄의 삯인 죽음을 당할 수 있는 본성일 것이다

     그들의 존재의 안전보장은 아담의 경우와 같이 지상으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복종 여하에 달렸다. 하나님의 공정, 사랑, 지혜와 그리고 그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일을 함께 협력하게 하시는 그의 권능은 현재 죄를 허용하시는 조처로 충분히 증명될 것이다.

오직 신의 본성만이 불멸하다. 인류의 거대한 다수는 언제나 죽음을 면치 못할 존재일 것이다.

 

사탄이 멸망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천사들이 죽음을 면치 못할 존재임을 증명한다.

     성서에는 아무데도 천사들이 불멸이라거나, 회복된 인류(구속된 교회는 제외하고)가 불멸일 것이라고 진술되어있지 않다. 이에 반하여, 불멸은 오직 신의 본성에만 속한다. 즉 원래 여호와께만, 그 후, 현재 지극히 높여진 상태에 계신 우리 주 예수님께, 마지막으로, 약속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입을 때 그의 몸인 교회에 속한다. (딛전 6:16, 5:26, 벧후 1:4, 고전 15:53,54)

     불멸은 다만 신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라는 증거를 우리가 가지고 있을 뿐이 아니라, 천사들은 죽음을 면할 수 없존재이며, 사실상 한때 그들 중에 한 천사 장이었던 사탄이 멸망하게 되어있다는 증명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2:14) 그가 멸망될 수 있다는 사실은 천사들이 한 계급으로서 죽음을 면할 수 없음 증명한다.

 

     여태까지 고려된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아는 것은 완강한 죄인들이 전멸될 때, 불멸의 존재와 죽음을 면할 수 없 존재들은 기쁨과 행복과 사랑 가운데 영원히 살 것이라는 것. 첫번 계급은 선천적인 생명 곧 자기 속에 있는 생명(5:26)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불가능한 본성을 소유하고 있다

     두 번째 계급은 죽음이 가능하지만, 완벽한 존재이며, 사악과 죄의 매우 죄스러움의 지식 때문에 죽음이 정당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 두 번째 계급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고 충실하기 때문에 완벽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들로 그들은 영구히 공급될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면치 못할 존재 - 이것은 영원한 고통(지옥)의 교리를 파괴한다.

 

 

 

 

 

 

 

 

 

죄를 짓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 ( 18:4,20)

     죽음을 면할 수 없음 불멸의 용어의 의미와 성서에서의 그들의 활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영원한 고통 (지옥)이란 교리의 바로 그 기초를 파괴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성서에 없는 학설에 근거를 두었다

(1)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멸로 창조하셨다

(2) 그는 멸망될 수 없다

(3)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시킬 수 없다.

 (4) 그러므로 완강한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어떻게든지 계속 생존함에 틀림없다는 것이 요지다

(5)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조화되어있지 않으므로, 그들의 영세는 비참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죄와 죄인들의 그러한 영속함에 대비하여 예비하셨다는 것과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 존재이며, 충만한 빛과 지식에 벗어난 고의적인 죄를 범한 죄인의 최대한의 처벌은 고통(지옥)속에서의 생존이 아니라, 둘째 사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한다. "죄를 짓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 (18:4,20)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말대꾸하느냐?" 
로마서 9:20

     총애를 부여하시는데 있어서의 공정

     어떤 사람은 공정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피조물가운데 총애를 부여하시는데 있어서 차이를 두셔서는 안 됨을 요하며, 만일 그가 한 사람을 높은 위치로 높이시면 어떤 사람이 자기 권리를 상실해서 낮은 위치로 당연히 지정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경우 이외에는 공평하게 모두를 같은 위치로 높이셔야함을 요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천사들보다 더 높게 창조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

상상된 원칙이 검토되었음

     만일 이 원칙이 옳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천사들보다 더 높게 창조하실 권리나, 모든 천사와 모든 인간을 다 같이 높이시려고 의도하시지 않으신 한 예수님을 그 다음에 신의 본성으로 더욱 높이실 권리가 없으심을 제시할 것이다

     이 원칙을 아직 더 전개하면, 만일 어떤 인간이 지극히 높임을 받고, 신의 본성에 참여자로 되게 하면, 언젠가는 모든 인간이 다 같은 위치로 올려 지게 되어야한다. 그뿐이 아니라, 이 원칙을 왜 극단까지 이끌지 않는가

     그래서 같은 진보의 법을 짐승과 곤충의 창조에도 적용하여,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니 언젠가는 짐승과 곤충 모두가 가장 높은 존재의 단계(신의 본성)에 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것은 명백히 불합리한 것이다. 그러나 가정된 원칙에서 본다면 그것은 어느 다른 추론에 못지않게 이치에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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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상태에 다양성

     필시 아무도 그 틀린 가정을 이점까지 전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틀린 가정이 단순한 공정에 기초를 둔 원칙이라면, 그것이 어디에서 중단하면 여전히 공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일 그러한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모든 그의 일들 가운데에 즐거운 다양성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모든 자연은 동물계나 비 동물계나 영광과 신의 권세와 지혜의 다양성을 전시한다. 그리고 훌륭한 다양성과 아름다움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창공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알리네." (19:1)

     라 함과 같이, 그의 지적인 창조는 그의 권세의 우수한 영광을 다양성 가운데 훨씬 더 전시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표현된 교훈과 이성과 자연의 유사에서 결론을 내린다.

공정이 이해되었다.

하나님의 주권

     우리가 공정에 대해서 옳은 관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총애는 결코 정당하게 공로로 받는 보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공정의 행동은 특별한 감사를 위한 경우가 아니며 사랑의 아무 증명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사랑 (공로 없이 주시는 은총) 을 피조물들에게 한없이 주신다. 이것은 답례로 마땅히 그들의 사랑과 찬양을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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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뜻하시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결코 죄를 범한 적이 없다해도, 우리를 단지 짧은 기간만 사는 피조물로 만드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 그래서 그는 어떤 종의  낮은 피조물을 만드셨다. 그는 우리가 잠시동안 그의 축복을 즐기게 하시고는 그 다음에 불공정함 없이 우리를 모두 존재에서 없어지게 하실 수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 짧은 기간의 생존이라 해도 그것은 총애다. 어쨌든 우리는 오직 그의 총애로 생존한다. 한번 죄로 잃은 존재의 구원은 얼마나 훨씬 더 큰 총애인가! 더욱이, 우리가 인간이고 짐승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의 총애다. 천사가 본래 인간보다 조금 높다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총애다. 그리고 주 예수님과 그의 신부가 신의 본성에 참여자가 되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총애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것을 감사로 받는 것이 그의 모든 지적인 피조물에 어울린다. 어떤 다른 정신은 공정하게 정죄를 받을 만하며, 만일 불평하는 정신에 빠지면 비천과 파멸로 끝날 것이다. 인간은 천사의 위치로 초청을 받은 적이 전혀 없으므로, 천사가 되기를 열망할 권리가 없다. 천사에게 신의 본성을 제공한 적이 전혀 없으므로, 천사는 신의 본성을 열망할 아무 권리도 없다.

   루시퍼의 포부 -“너 빛나는 자, 새벽의 아들아, 오 어찌 네가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너 나라들을 무력하게 한 자야, 어찌 네가 잘려 땅에 쓰러졌는가! 너는 마음속으로 말하였지. 하늘에 내가 올라갈 것이다.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가 나의 왕좌를 높이고, 북쪽 맨 끝 부분에 있는 모임의 산 위에 앉을 것이다.” ( 14:12,13)

     사탄의 비천을 초래한 것은 그의 자만심의 포부이며, 그의 포부는 파멸로 끝날 것이다.(14:14)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질 것이며,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입니다."(14:11) 그러나 반드시 가장 높은 위치로가 아니다.

     성서에서 가르친 택하심에 관한 주제가 일부는 공정에 대한 그릇된 관념에서,  일부는 다른 근거들에서, 많은 논쟁과 오해의 근거가 되었다. 성서가 택하심을 가르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택하심이 정말 어떤 원칙에 근거되어 있는지는 의견의 상당한 차이가 있는 문제다

     어떤 의견은 그것이 독단적, 무조건의 택하심이라 하고, 다른 의견은 그것이 조건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쌍방의 견해에는 어느 정도 진리가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하나님의 편에서 택하심은 한 어떤 목적이나 직무나 조건을 위한 그의 선택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조물 중 얼마는 천사들, 얼마는 인간들, 얼마는 짐승들, 새들, 곤충들, , 이 되고, 또 얼마는 그의 신의 본성에 속하게 될 것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신의 본성으로 받아드려질 모두를 어떤 조건들에 따라서 선택하시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이들이 신의 본성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느 피조물이 어느 단계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순전히 총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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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이 진흙 덩어리를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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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그것은 원하는 사람이나 달리는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고 자비 곧 친절이나 총애(9:16)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선택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나아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의 본성으로 초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죄를 범하지 않은 천사들을 빼놓고, 구원된 죄인들 중 얼마쯤을 신의 영광으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것을 가지고 그가 원하시는 대로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며, 그의 계획의 성취를 위하여 이 권리를 발휘하시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이여, 도대체 당신이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말대꾸합니까?" 

     빚음을 받은 것이 빚은 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말하겠습니까

     "도공이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 (9:20,21) 

     모두가 같은 신의 권세로 창조되었다. 얼마쯤은 보다 더 높은 본성과 보다 더 큰 영예를 갖고, 얼마쯤은 보다 낮은 본성과 보다 덜 귀한 영예를 갖도록 창조하셨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인간)를 지으신 분"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내 아들들에 관하여 앞으로 있을 일들을 나에게 물어라. 내 아들들에 관하여" 내 손이 한 일에 관하여 너희는 나에게 명령하느냐

     바로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도 창조하였다. 내가 (내 손이) 하늘을 폈으며, 모든 천사의 무리에게 내가 명하였다. "하늘의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 땅을 지으신 분이며 그것을 만드신 분, 그것을 굳게 세우시고 그것을 헛되이 창조하시지 않으시고 사람이 거주하도록 지으신 분,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이며, 다른 이가 없다." (45:11,12,18) 

     아무도 하나님께 지시할 권리가 없다. 만일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헛되이 창조하시지 않으시고 회복된 완벽한 사람들이 거주하도록 지으셨으면, 우리가 누구라고 하나님께 대꾸하며, 그들의 본성을 변화하여, 모두를 천사나 그의 신의 본성의 참여자로 만들지 않은 것이 불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 말씀에 겸손하게 와서 장래 일을 "묻는 것"이 우리의 관념을 실행하셔야 한다고 하나님께 "명령"하거나 단언하는 것 보다 얼마나 훨씬 더 어울리는가? 주여, 주제넘은 범죄를 짓지 않게 당신의 종을 붙들어 주시고, 그 죄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19:13) 하나님의 자녀 중 아무도 알면서 주님께 지시하지 않을 줄 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 오류에 빠지는지 모른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녀들이다. - 그의 손으로 만드신 작품이다.

인간에게 만족한 분배를 위한 하나님의 예비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된 자녀들로서 그의 손으로 만드신 작품이다. 그리고 그들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말씀에 분명히 드러내시었다. 바울이 말하기를, 첫 사람 (인류가 완벽하게 될 때의 표본)은 땅에서 났으니 흙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의 후세는 복음교회를 제외하고는 부활 때 여전히 흙으로 만들어지고, 땅에 순응되는 인간일 것이다. (고전 15:47,38,44) 

     다윗이 선언하기를, 인간이 천사들보다 단지 조금만 낮게 만들어지고, 영광과 영화와 지배권으로 관을 씌우셨다고 했다.(8:4-8) 그리고 베드로, 우리주님, 그리고 예전의 모든 예언자들이 선언하기를, 인류가 그 영광스러운 완벽으로 회복되고, 아담이 인류의 전형으로서 누리듯이 땅을 다시 지배하게 된다고 한다. (3:19-21)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기로 택하신 것이 이 몫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몫인가! 죄 때문에 아직까지 많은 불행과 고뇌, 타락과 슬픔의 장면에 여러분의 눈을 잠깐 동안 감고, 여러분의 정신 시각 앞에 완전한 지구의 영광을 그려보시오. 죄의 단 하나의 얼룩도 완전한 사회의 조화와 평화를 망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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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쓰라린 생각, 하나의 불친절한 얼굴표정이나 말도 없고,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사랑이 다른 모든 마음 안에서 같은 감응을 받으며, 모든 행위는 자비심을 보인다. 거기에는 병이나 고통이나 아무 부패의 흔적인 그러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조차 다시는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일찍이 본적이 있는 상당한 건강과 인간 형태와 용모의 아름다운 모든 그림들을 생각해 보시오. 그리고 완벽한 인류는 아직도 보다 뛰어난 사랑스러움의 존재일 것을 아시오.

 

속의 순수함과 정신적, 도덕적 완벽은 모든 빛나는 용모에 새기고 영광을 더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 땅의 사회일 것이며, 이렇게 그들이 부활 일의 완성이 현실화 , 눈물 흘리는 사별한 사람들은 그들의 눈물이 모두 닦일 것이다. ( 21:4)

 

사람은 인간 단계에서 영광에 아주 흡수되고 도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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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완전한 것들에 기뻐하시듯이, 인간에 대해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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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인간 사회에 있어서 만의 변화이다. 그러한 인류가 거주하도록 지으신 땅은 그들을 위해서 알맞고 유쾌한 거주가 된다는 것도 상기한다. 이 거주는 전형적인 사람이 최초에 거주한 에덴낙원의 전형과 같게 된다

     낙원이 회복될 것이다. 땅은 다시는 가시와 찔레나무를 돋게 하지 않을 것이며, 생계를 산출하기 위하여 얼굴에 땀을 흘릴 필요가 없이, "땅은 산물을 (쉽게 자연적으로) 낼 것이다"(85:12) "사막이 백합화 같이 필 것이다"(35:1) 낮은 층 동물의 창조가 완전하고 기꺼이 순종하는 종들이 될 것이다

     모든 유쾌한 다양성이 있는 자연은 모든 방향에서 하나님의 영광, 권세, 사랑을 찾고 이해하라고 인간에게 주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정신과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것이다. 지금 널리 퍼지고있는 어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바라는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결함과 우리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에 기인한 비정상의 상태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열망하는 것은 하나님 같지 않다

     대부분의 사물이 하나님께는 오래된 것이며, 그는 오래되고 완전한 것들에서 가장 기뻐하신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될 때, 인간도 오래되고 완전한 것들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듯이 가장 기뻐할 것이다. 완벽한 인간은 본성이 다른 까닭에 영적 존재의 영광을 충분히 알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존재의 영광을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같은 이유로 물고기와 새가 각기 그 자신들의 본성과 생육지를 오히려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것과 똑 같다. 사람은 인간 단계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영광에 아주 흡수되고 도취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소유한 것들 외의 또 다른 본성이나 상태를 열망하거나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현재 경험의 일견은 이것을 예증할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10:23, 18:24) 현재 사악과 죽음의 지배 밑에서까지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금밖에 없는 좋은 것들이 인간의 본성을 아주 현혹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과 목적을 영적 약속에 고착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스도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몸을 택하심

     그리스도의 몸인 기독교의 교회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일반적 계획에 예외라는 것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교회를 택하실 것을 신의 계획 가운데 정하셨다는 말씀을 보아 분명해진다.(1:4,5)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로 타락을 예견하셨을 뿐이 아니라, 이 계급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기로 예정하셨다.

      복음시대에 하나님께서 이 계급을 불러내고 계신다. 그 목적은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시고, 신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고, 전 인류의 의로움과 평화의 설립을 위한 천년 왕국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8:28-31)


 

 

 

 

 

 

 

 

교회가 한 목적을 위하여 선택되고 있는 중이다.

교회는 각 개인의 시험과 개인적으로 이겨냄에 따라 선택된다.

     이것은 교회선택이 하나님 편에서 예정된 일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 개별적 구성원들을 무조건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단의 사람이 특정한 기간(복음시대) 이내에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선택하는 것을 정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각 개별적 구성원의 행위를 예견할 수 있다는 것과 정말 누가 합당하며 그래서 누가 "적은 무리"의 일원들을 구성한다는 것을 예지하실 수 있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택하심에 관한 교리를 진술하고 있는 방법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깨우치려고 노력한 것은 각 개인을 미리 정하신다는 생각이 아니라, 한 계급을 명예로운 위치를 채우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미리 정하셨다는 것이다

     그 계급의 선택은 여러 가지 믿음의 가혹한 시험, 순종, 세속적 특권의 희생, 등의 필요조건을 죽기까지 수행하는 가에 좌우된다. 그렇게 각 개인의 시험과 각 개인이 "이겨냄"에 따라서 예정된 계급의 개인적 구성원들이 선택하고 있다. 이 계급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과 혜택을 예정하셨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은 명예롭게 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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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8:30 에 그리스어 doxazo 에서온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은 명예롭게 됨을 의미한다. 교회가 그 위치로 택해진 것은 큰 명예중의 하나이다. 아무도 그렇게 큰 명예를 얻기 위한 열망을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 주님도 그 위치를 얻기 위해 열망하기 전에 먼저 초대를 받았다. 우리가 읽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 영광스럽게 되신(doxazo -명예롭게되다) 것이 아니라, 그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내가 네 아버지가 되었다. (5:5)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님을 이렇게 명예롭게 하셨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공동 상속자들이 될 당선된 몸의 모두는 여호와의 총애로 이렇게 명예롭게 될 것이다. 교회의 머리와 같이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1:18) 하나님의 영적 본성으로 잉태될 때, "명예"의 시작을 경험한다

     그리고 영으로 낳을 때, 그 명예로 완전히 안내될 것이다. 곧 영적 존재들 (하늘의 영광을 받은 머리의 형상) 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예를 주실 그들은 완벽하고 청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유전으로 죄인인 까닭에 그는 우리를 명예로 오직 초청(불으심) 하셨을 뿐이 아니라,  그 명예를 우리가 받도록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죄에서 의롭다 인정하실 것도 역시 준비하셨다.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충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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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은 무리를 선택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매우 일반적인 부르심"-초대를 받은 사람은 많으나-을 베푸신다. (22:14) 모든 사람이 부르심을 받지 않는다. 부르심이 우리 주님의 전도 기간 처음에는 육적 이스라엘에게 제한되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종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이 특별한 총애의 연회로 올 것을 강요(강제가 아님) 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듣고 오는 사람들일 지라도 모두가 다 합당하지는 않다. 예복(그리스도의 귀여된 의로움)을 주었으나 어떤 사람은 예복을 입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버림을 받아야 된다. 의롭다고 인정되는 예복을 입고, 새로운 본성으로 낳게되는 명예를 받는 사람들 중에, 그들의 서약에 충실함으로 부르심과 택하심을 스스로 확실히 하는 것에 어떤 사람은 끝내 실패하고 만다. 영광 가운데 어린양과 나타나기에 적합한 그들에 관해서 선언하기를, "그들은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충실한 사람들이다." (14:1, 17:14)

부르심은 조건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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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부르심은 참되다. 교회를 선택하고 높이시려는 결심은 불변이나, 누가 이 선택된 계급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조건 나름이다. 미리 정해진 명예를 함께 나눌 사람 모두는 그 부르심의 조건을 완수 해야한다

     "그러므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 지라도 여러분 중에 그 약속에 달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까 두려워합니다."(4:1) 하나님의 위대한 총애는 원하는 사람이나 달리는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원하는 사람에게 달음박질하는 사람에게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피조물로 그가 원하시는 것을 행사하시는 절대적인 권리와 목적을 분명히 정당화하였으므로, 모든 하나님의 총애를 부여하시는 특징적인 원칙은 모든 사람의 전체적인 행복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를 끈다.

두 본성의 혼합은 없다.

     우리는 성서 권위에 의거하여 인간의 본성과 영적 본성은 분리되고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확립했다고 판단한다. 두 본성을 혼합하는 것은 확실히 하나님의 계획의 부분이 아니라, 불완전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본성에서 또 다른 본성으로 변화하는 것은 통례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단 한 경우에 있어서 예외이지만, 어떻게 그 변화가 성취될 것이고, 어떤 조건들에서 그것이 달성될 것이며, 어떤 방법으로 변화를 가져오는가를 배우는 것은 깊은 흥미 대상의 문제가 된다.

인간 본성에서 신의 본성으로의 변화는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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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살아나셨다.”

어떻게 그들의 본성의 
변화가 완수되나?

     교회가 주님과 더불어 신의 본성으로(벧후 1:4) 높여질 수 있는데 의거하는 조건들은 주님께서 의거하여 그것을 받은 조건들과 정확히 같다. 그가 산 제물로 희생하신 것과 같이, 자기의 몸을 산 제물로 희생하시면서, 그의 발자취를 바로 따르고(벧전 2:21) 그 다음에 회생이 죽음으로 끝날 때까지 충실하게 그 헌신의 서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신의 본성으로 변하는 이 변화는 우리 주님께서 인간 본성을 희생하신 것과 같이, 복음시대 이내에, 인간의 본성을 그것의 모든 관심들, 현재와 미래의 희망, 목적들과 더불어 죽을 때까지 희생하는 그들에게 보답으로 준다

     부활 때 그런 사람들은 나머지 인류와 더불어 인간의 완벽으로 회복되는 축복이나, 모든 회복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축복에 참여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신의 본성에 참여자들로서, 주님의 형상, 영광,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깨어날 것이다. (8:17, 딛후 2:12)

새 본성. 잉태가 있고: 그 다음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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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침례

     새 본성의 시작과 발달은 인간 생명의 시작과 발달에 비유된다. 인간인 경우에 잉태가 있고, 그 다음에 탄생이 있는 것과 같이, 새 본성인 경우에도 역시 그렇다.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에게서 새로 나게 하신다고 한다. (1:18, 벧전 1:3, 요일 5:18) 

     즉 그들은 그의 말씀으로 하나님에게서 신의 생명에 첫 충동을 받는다. 속죄물에 대한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받았을 때, 그들은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고(속죄 받고, 의롭다고 인정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의 온당한 봉사입니다."라는 부르심을 듣는다. (12:1) 

     그리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들이 그들의 의롭다고 인정된 인간성을 예수님의 산 제물과 병행하여 하나님께 산 제물로 헌신할 때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며, 바로 그 행위를 하는데서 영적 생명이 시작된다

     그러한 사람은 즉시 인간의 욕구를 못 박힘까지, (변화된) 마음이 고무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그 자신을 발견한다. 헌신하는 순간서부터 하나님께서 이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간주하신다. (6:15, 고후 5:17)

태아 새로운 피조물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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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태아 "새로운 피조물" 에게 이전의 것 (인간의 욕구, 희망, 계획, )은 사라지고 모두 새것이 된다. 그 태아 "새로운 피조물" 은 지나간 희망, 목적, 욕망, 등을 가지고 있는 이전 인간 본성을 못 박을 때 계속 자라고 발전한다. 이 두 과정은 헌신하기 시작하는 때부터 인간이 죽고, 영적 성과를 낳을 때까지 동시에 진보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의 계획을 더욱 더 계속 나타낼 때, 그는 우리의 죽을 수밖에 없는 몸들까지 그렇게 소생시켜서(8:11)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몸들이 그에게 봉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적절한 때에 우리는 모든 점에 있어서 새로운 신의 마음에 적응되는 새로운 몸, 영적 몸, 하늘의 몸을 가질 것이다.

부활

     "새로운 피조물" 이 태어남은 부활 때 이루어지며 (1:18) 이 계급의 부활은 첫째 (최고의) 부활이라고 부른다. (20:6) 우리가 입양의 영을 받을 때부터 영적 존재라고 간주되기는 하나, 부활 때까지 실제로 영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8:23-25, 1:13,14, 6:10,11) 

     우리가 실제로 영적 존재가 될 때, 즉 우리가 영으로 태어날 때 다시는 우리가 육적 존재가 아닐 것이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 때문이다.(3:6)

헌신

     부활 때 영적 본성으로 태어남은 헌신할 때에 성령으로 잉태가 선행해야 한다. 이것은 육적 탄생이 육으로 잉태가 선행되어야함과 꼭 마찬가지다. 땅에 속한 첫 아담을 닮은 모양으로 육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육으로 먼저 잉태되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새로 잉태되어, 적절한 때에 하늘에 속한 자를 닮은 모양으로 첫째 부활에 영으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변절하지 않는 한,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진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녀온 것 같이, 또한 우리는(교회)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지닐 것입니다." (고전 15:49, 6:6)

당신의 마음을 새롭게 함 - 변화하는 일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동정심으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살아있고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아 드리실 만한 희생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드리는 신성한 봉사입니다.” ( 12:1)

     하늘의 소명을 받아드리고 거기에 순종하는 우리의 헌신은 특별한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지만,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마음과 조화되게 하는 것은 점차적인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땅을 향하여 구부러진 모든 생각을 하늘을 향하여 구부리게 하는 것은 점차적이다. 사도 바울은 이 과정을 변화하는 일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문제를 그의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